“양승태 전 대법원장(71)이 단순히 지시나 보고 받는 걸 넘어 가장 심각한 범죄 혐의들을 직접 주도한 것이 확인됐기 때문에 구속영장 청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사법부 71년 역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법원장에게 18일 구속영장을 청구한 이유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검찰에서 세 차례 피의자 신문을 받을 당시 양 전 대법원장은 “실무진이 알아서 한 일”이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해 구속영장실질 심사에서 양측의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 “양 전 대법원장이 최종 책임자”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양 전 대법원장을 재판 개입 및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최고 책임자’로 지목하며 18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조서 열람을 마무리한 지 하루 만이며 11일 첫 소환조사 이후 일주일 만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그동안 3차례 소환조사를 받았으며 조서 열람을 포함하면 총 5차례 검찰에 출석했다.
검찰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이 ‘업무상 상하관계에 의한 지휘 감독에 따른 범죄행위’라고 판단했다. 사법부의 업무 시스템상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 법원행정처 차장 등 수직적인 상하관계에 따라 재판 개입과 사법정책이 결정된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이에 따라 상급자일수록 더 높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검찰의 시각이다. ‘핵심적 중간책임자’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60·수감 중)이 이미 구속된 만큼 최종적 결정권자이자 책임자인 양 전 대법원장의 영장청구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또 검찰은 앞서 확보한 전·현직 판사들의 진술과 객관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양 전 대법원장이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어 증거 인멸의 우려가 높다고 결론 내렸다.
○ 영장 260쪽, 임 전 차장보다 26쪽 늘어
검찰은 지난해 10월 임 전 차장의 구속영장에 양 전 대법원장을 피의자로 처음 적시한 뒤 양 전 대법원장 관련 의혹들을 집중적으로 수사해왔다. 하지만 임 전 차장이 묵비권을 행사하고, 지난해 12월 박병대(62), 고영한(64) 두 전직 대법관에 대한 1차 영장이 모두 기각되면서 수사팀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그 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법원행정처 보고라인을 거치지 않고, 직접 범죄를 주도한 증거를 집중적으로 확보해왔다.
그 결과 양 전 대법원장은 2015, 2016년 전범기업을 대리하는 김앤장 소속 한모 변호사와 독대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손배소송 재판 지연 전략을 논의한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또 주심인 김용덕 전 대법관에게 “(전범기업 패소) 판결 확정 시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라고 의견을 제시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상고법원에 반대하는 등 법관들에 대해 인사 불이익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된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보고서’에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서명한 사실도 밝혀졌다.
양 전 대법원장의 영장에는 40여 가지의 범죄사실이 포함됐고, A4용지 260쪽 분량으로 늘어났다. 영장청구서 분량이 임 전 차장(234쪽)과 박 전 대법관(200쪽)보다 많아졌다. ○ 박 전 대법관만 영장 재청구
검찰은 또 박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 박 전 대법관의 영장 청구서는 범죄사실이 30여 가지이며 지난해 12월 기각됐던 첫 번째 영장청구서(150여 쪽)보다 분량이 늘었다. 검찰이 보강 수사를 통해 판사 출신인 서기호 전 정의당 의원의 판사 재임용 탈락 취소 소송을 담당한 재판부에 박 전 대법관이 조기 선고를 요구한 혐의 등을 구속영장에 추가했다.
반면 고 전 대법관에 대해서는 영장을 재청구하지 않았다. 고 전 대법관이 검찰 조사에서 사실 관계를 인정한 부분이 박 전 대법관보다 상대적으로 많고, 범죄 혐의에 관여된 정도가 적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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