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서울 은평구 녹번동 꽈배기나라. 16.53m² 남짓한 가게에 밀려드는 손님을 맞는 제빵사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세 번 숙성한 밀가루 반죽을 꼬아 꽈배기를 만들고, 아이 주먹만 한 팥 앙금을 찹쌀 반죽으로 감싸 도넛을 만든다. 5개 3000원짜리 꽈배기와 3개 2000원 하는 도넛을 만드는 6명은 평균연령 70세가 넘는 어르신들이다.
꽈배기나라는 노인일자리 전담기관 은평시니어클럽에서 2013년 6월 어르신 일자리 창출을 위해 만들었다. 서울시와 은평구를 통해 일자리를 소개받은 만 60세 이상 어르신들이 꽈배기의 제작·판매부터 배달까지 모두 맡고 있다.
꽈배기나라 점장 안국희 씨(74·여)는 한때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사장님’이었다. 1983년부터 20년 넘게 운영해 온 레스토랑을 접은 안 씨는 지인의 소개로 꽈배기나라 개점부터 참여한 창업 멤버다. 레스토랑을 운영하긴 했지만 제빵 경험은 전혀 없었던 안 씨가 꽈배기와 도넛을 만든 지도 5년이 넘었다.
안 씨는 “심장, 허리, 무릎, 목 디스크 등 온갖 수술을 했지만 끄떡없다”며 “무릎 수술하고 퇴원한 지 사흘 만에 출근했다. 가야 할 곳이 있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전혀 힘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꽈배기나라의 빵은 녹번동 일대 인기 만점 간식이다. 경기도에서도 단골손님이 찾아온다고 한다. 점심시간이 지난 뒤에도 꽈배기와 도넛을 한 봉지씩 사가는 고객이 줄을 섰다. 이곳의 월 매출은 740만∼750만 원. 올해 목표는 연매출 1억 원을 처음 넘기는 것이다.
꽈배기나라에서 차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은평구의 한 아파트단지. 경제 호황기였던 1980년대 초반 중동에서 기술을 배워 사업을 했던 박재열 씨(71)는 이 아파트 단지의 택배기사다. 2012년 사업을 접고 은퇴했던 박 씨는 “2년 동안 쉬며 그동안 못 만난 친구도 만나고, 가족과의 시간도 보냈지만 어느 순간 무료함과 아쉬움이 느껴져 일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 씨는 2014년 12월부터 서울실버종합 물류회사의 택배기사로 변신해 하루 평균 6시간씩 60여 가구에 택배를 전달한다. 박 씨의 부인(64)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한다. 박 씨는 “두 딸을 시집보낸 뒤 적적했는데, 부부가 각자 일하고 함께 사니 신혼 같다”고 했다. 박 씨와 함께 일하는 11명은 모두 60, 70대 노인이다. 하지만 무거운 택배도 젊은이 도움 없이 맞들며 택배카트로 옮기고 있었다. 박 씨는 “젊은 택배기사들은 많은 물건을 배달해야 하니 초인종만 누르고 물건을 바닥에 내려놓은 채 사라지기도 하는데, 우린 꼭 고객의 얼굴을 보고 웃으며 건네니 주민들이 좋아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시민 10명 중 1명은 70세 이상 어르신이다. 행정안전부의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서울에 거주하는 70세 이상 어르신은 94만1831명으로 집계돼, 전체 서울시 인구(976만5623명)의 9.6%에 이른다. 0∼9세(69만368명)나 10∼19세(85만5121명)보다 많다.
서울시는 건강하고 활동 능력이 있는 어르신들에게 일자리를 소개함으로써 인생이모작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각 자치구, 노인복지관, 시니어클럽을 통해 지난해에만 어르신 6만6617명에게 일자리를 소개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생계가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일자리를 소개해 소득을 올리고 보람을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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