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철 조경란 이기호 김숨 정세랑 조남주….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29명의 짧은소설을 모은 ‘멜랑콜리 해피엔딩’(작가정신·1만4000원·사진)이 나왔다. 이들을 한데 모은 힘은 박완서 작가(1931∼2011)이다. 생전 선생이 ‘방 안에 들어앉아 창호지에 바늘구멍을 내고 바깥세상을 엿보는 재미’에 비유했던 짧은소설로 8주기를 기렸다. 이 가운데 함정임(55) 손보미 작가(39)를 17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함 작가는 한 출판사 편집부에서 일하던 시절 맺은 인연으로 20년간 선생을 곁에서 지켜봤다. 그가 쓴 ‘그 겨울의 사흘 동안’에는 작가로 살다 간 어머니의 유작을 정리해 나가는 딸들의 연대가 담겼다. 함 작가는 “작품에 선생님을 적극 등장시켰다. 실화 99%에 허구 1%를 섞었다”고 말했다.
손 작가의 작품 제목은 ‘분실물 찾기의 대가3―바늘귀에 실 꿰기’. 그는 “선생님의 ‘나의 아름다운 이웃’의 부제 ‘바늘구멍으로 엿본 바깥세상 이야기’에서 따왔다”고 설명했다.
두 작가는 선생에 대한 추모 열기가 식지 않는 이유로 깊고 넓은 작품세계를 꼽았다. 함 작가는 “선생님은 작품 그 자체로 성별을 떠나 문단을 평정하고 독자에게 인정받았다”고 했다. 손 작가는 “선생님의 작품은 따뜻함, 기묘함, 신랄함, 부드러움을 종횡무진 넘나든다”고 말했다.
“교과서에 실릴 만큼 부드러운 작품, 그로테스크한 이야기, 가슴 절절한 멜로…. 한 사람이 쓴 게 맞나 싶을 정도예요.”(손)
“전쟁과 광복 이후 한국 사회를 겪어낸 복잡다단한 인생사가 작품에 녹아들어서 그런 것 같아요.”(함)
여성 후배들에게 남긴 유산도 적지 않다. 손 작가는 “호명되지 못한 채 사라진 여성 작가가 적지 않은데 선생님으로 인해 문학계 토양 자체가 달라졌다”고 했다.
닮고 싶은 선생의 면모는 뭘까. 함 작가는 평생 ‘현역’으로 살다 간 점을 꼽았다.
“부지런히 신작 소설과 영화를 챙겨 보셨어요.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도 읽고 쓰는 영원한 현역이셨죠.”(함)
손 작가는 소설과 삶이 일치된 점을 본받고 싶다고 했다. 본인은 일상을 소설화해본 적이 없는데, 언젠가는 삶이 소설에 투영될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그러자 함 작가가 손 작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작가는 단계마다 사회나 독자가 이끌어주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계속 쓰다 자연스럽게 그런 시점이 오지 않을까?”
서로를 향해 몸을 돌린 두 사람이 대화를 이어갔다.
“선생님은 대선배지만 워낙 격의 없이 대해 주셔서 함께 있는 자리가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았어. ‘박완서 스타일’이랄까. 그나저나 손 작가 눈망울이 선생님을 닮았어. 맑고 예리한….”(함)
“눈망울이 닮았다니, 괜히 뿌듯한걸요? 함 선생님도 박 선생님과 비슷한 면이 있어요. 몇 해 전 심사위원으로 만나 2박 3일 동고동락할 때 손수 커피와 빵을 싸오셨죠.”(손)
“선생님 댁에 가면 박하 잎을 따다 차를 끓여 주시고 2, 3시간씩 고민을 들어주셨어. 직·간접적으로 겪고 느끼며 닮아가는 것, 이런 게 선생님의 힘인가 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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