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특파원 부임 길은 험난했다. 가장 애를 먹은 게 집 구하기. 부임 두 달 전인 지난해 11월부터 도쿄 오사키역 근처 맨션을 찾았다. 일본에서 집을 구할 때는 보증회사 심사와 집주인 심사를 각각 거쳐야 하는데, 둘 중 어느 한 곳에서라도 ‘노(NO)’라고 하면 계약할 수 없다. 신청부터 계약까지 한 달 정도 걸린다.
오사키역 근처 부동산중개업체에 따르면 일본 경기가 살아나면서 해외 비즈니스맨들이 대거 몰려온 2년 전부터 집을 구하는 게 어려워졌다고 한다. 간혹 나오는 맨션의 가격은 터무니없이 비쌌다. 2012년 첫 부임 때 살았던 맨션(오사키역에서 두 정거장 떨어진 다마치역 인근)은 7년 만에 월세가 30% 올라서 넘볼 수조차 없었다.
임대맨션 50여 곳의 문을 두드렸는데, ‘외국인은 받지 않는다’는 통보를 두 번이나 받았다. 마음에 드는 맨션에 1순위로 신청했지만, 보증회사 심사에서 불합격했다. 결국 두 번째 특파원 생활을 호텔에서 시작했다. 현지 부동산중개업체도 뭐가 문제였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7년 전만 해도 전혀 고민할 필요도 없었던 일들이 난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악화된 한일관계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한일관계의 현주소는 부임 전 서울에서 만났던 전문가들로부터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그중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을 일본이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는 것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연구소장은 “화해치유재단 강제 해산, 레이더 갈등이 각각 1 정도의 영향을 미쳤다면 강제징용 판결 영향력은 10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요즘 일본 정계와 관계는 ‘한국 무시’ 혹은 ‘한국 때리기’에 한창이다. 지한파 일본 지식인들조차 한일관계 개선이란 말을 편하게 꺼낼 수 없을 정도로 분위기가 악화되고 있다. 막후에서 중재해주는 원로도 이젠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단순 해프닝으로 끝났을 ‘사격레이더 조준’ 사태도 한 달을 넘겨 아직까지 책임 공방을 벌이는 처지다.
“몸조심하라”는 한국 지인들의 말을 수차례 들으며 무거운 마음으로 일본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재류카드를 만들었고, 구청에 가서 3년 재류를 신고했다. 주말엔 시부야와 하라주쿠, 신주쿠 일대를 살펴봤다. 그런데 이상했다. 험악한 시선을 예상했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일본 특유의 친절함, 배려, 오모테나시(손님을 극진하게 모시는 일본 문화)는 여전했다.
말단 공무원과 음식점 아르바이트생은 한국 관광객들에게 영어와 일본어를 섞어가며 최선을 다해 설명했다. 19일 시부야의 쇼핑몰 ‘시부야109’ 정문에는 ‘레드벨벳과 함께하는 겨울 세일’이란 큼지막한 현수막이 걸렸다. 매장에는 레드벨벳뿐 아니라 트와이스, 블랙핑크 등 한국 걸그룹의 노래들이 쉴 새 없이 나왔다. 일본 극우들의 훼방에도 불구하고 한국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에 여전히 일본 청소년들이 구름처럼 몰린다고 한다. 적어도 평범한 일본 국민 레벨에서는 반한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지난해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이 753만 명으로 사상 최대 기록을 갈아 치운 것도 바로 이런 분위기 덕분이었을 것이다.
정치, 외교, 군사 분야에서의 한일 관계는 싸늘하게 식고 있지만 민간 분야, 특히 여행과 예술 분야의 교류는 여전히 뜨겁다. 다행이다. 그리고 이게 희망이다. 레이더 사태 등 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일본의 사과를 받고 공방을 벌이는 데 몰두하기보다는 민간 교류의 소중한 불씨를 살려나가는 것이 더 중요한 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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