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도치고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다. 20일 종영한 tvN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기대보다는 우려가 컸다. 국내 최초로 드라마에 증강현실(AR)을 도입했지만, 스마트렌즈를 낀 배우 현빈(유진우)이 게임 속 장검(長劍)을 든 중세의 무사로 변신해 결투하는 설정을 받아들일 시청자가 얼마나 되겠느냐는 지적이 많았다. 마지막 회에서 유진우가 마침내 게임 속 버그인 차형석(박훈), 차병준(김의성), 서정훈(민진웅)의 가슴에 차례로 열쇠를 꽂아 버그를 삭제했고 게임은 초기화됐다. 죽었다고 여긴 유진우가 살아 있음을 암시하며 마무리되자 예상치 못한 결말이라는 반응과 초반에 던져 놓은 ‘떡밥’을 회수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엇갈렸다. 이런 논란에도 ‘알함브라…’는 종영 직전 9∼10%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이 기묘한 드라마의 기원은 게임 ‘포켓몬 고’였다. 3년 전 송재정 작가(46)는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스마트폰으로 포켓몬을 잡으면서 AR 소재를 떠올렸다. 15일 서울 영등포구 전경련회관에서 만난 그는 “영화 ‘아바타’, ‘레디 플레이어 원’처럼 가상현실 콘텐츠는 제작비가 많이 들지만, 증강현실은 기존 화면에 아이템만 컴퓨터그래픽(CG)으로 처리하면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tvN ‘인현왕후의 남자’(2012년), ‘나인’(2013년)에 이은 타임슬립(시간여행) 3부작 드라마 기획도 과감히 포기했다.
그는 전형적인 드라마 작가는 아니다. SBS ‘순풍산부인과’, MBC ‘거침없이 하이킥’ 등 시트콤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때의 옴니버스 작법 때문인지 16부작인 이번 드라마도 16개의 엔딩을 써놓고 집필을 시작했다. 그는 ‘대항해시대’, ‘문명’ 등 평소 하던 게임을 읊으며 “생소한 게임 소재였지만 ‘게임 마니아’라 따로 공부가 필요하지 않았다”고 했다.
“처음 드라마를 쓸 땐 ‘이게 말이 돼?’, ‘판타지물의 기본을 모른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때마다 ‘판타지에 정해진 틀이 어디 있느냐’는 반발심이 들더라고요.”
아이디어는 다른 분야의 콘텐츠를 보며 건져 올린 경우가 많다. 전기차 제조사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의 자서전을 읽고 현실과 게임을 넘나들며 오류의 실체를 찾아 나선 게임회사 대표 유진우를 떠올렸다.
소재는 통통 튀지만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영웅 서사’라고 했다. 송 작가는 “내 작품들은 평범한 인물이 초현실적인 일을 겪으며 사랑을 찾고 진짜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며 “‘알함브라…’ 속 유진우도 현대판 ‘오디세우스’와 다르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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