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승장구하던 SK그룹에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SK하이닉스와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등 3대 주력 계열사의 실적이 동반 하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SK그룹은 반도체, 통신 등 기존 주력사업과 함께 전기차용 배터리 같은 신사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방침이다. 재계에서는 ‘위기일 때 투자해 시장이 성장할 때 이익을 실현한다’는 최태원 회장의 승부수가 이번에도 통할지 주목하고 있다.
○ 3대 주력 계열사 모두 실적 내리막 22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24일 발표되는 SK하이닉스의 지난해 4분기(10∼12월) 실적은 매출 10조 원, 영업이익 5조 원 안팎으로 전 분기 대비 각각 12%, 24% 감소했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1분기(1∼3월)에는 매출은 6조5000억 원, 영업이익은 2조 원대로 더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주력인 D램 반도체 가격이 지난해 4분기에만 11% 급감한 데 이어 올 1분기에도 꾸준한 하락세가 예상돼서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4분기 기준 500억 원이 넘는 적자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 분기 적자는 2014년 4분기 이후 4년 만이다. 지난해 말 국제유가가 2018년 평균 대비 최대 22% 넘게 떨어지면서 막대한 재고평가손실을 떠안은 데다 지난해 12월 첫 주 3달러대로 떨어진 정제마진이 좀처럼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 국내 정유사의 정제마진 손익분기점은 4.5달러 안팎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급락하면서 북미 정유업체들의 휘발유 생산량이 급증한 데다 글로벌 수요가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SK텔레콤 역시 지난해 4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10% 이상 감소한 2600억 원대의 영업이익을 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요금 인하 압박에 수익성의 핵심 지표인 가입자당 매출(ARPU)이 1년 새 8% 가까이 감소한 게 주 원인으로 꼽힌다. 3대 주력 계열사인 SK하이닉스와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의 실적이 모두 내리막길에 들어서면서 2017년 처음 20조 원을 돌파한 SK그룹 영업이익은 올해 대폭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 ‘위기를 기회로’ 승부수 통할까
이 같은 위기에도 SK그룹의 투자는 더 공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김준 사장은 최근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전기차 배터리 부문에 2025년까지 약 11조 원을 투자해 생산 규모를 100GWh로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확정된 투자(약 3조5000억 원)의 배가 넘는 7조5000억 원을 추가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폴더블 디스플레이의 핵심 소재인 투명 PI 필름 생산 공장도 올해 신설해 가동에 들어간다.
하강 국면으로 접어든 메모리반도체도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정부가 주도하는 투자 규모 120조 원짜리 반도체 클러스터에 참여하는 한편 지난해 12월에는 경기 이천시에서 차세대 노광장비(EUV) 전용공간을 보유한 M16 생산라인 기공식을 열었다. SK텔레콤도 5G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케이블방송 등 대규모 인수합병(M&A)을 꾸준히 검토하고 있다.
SK그룹이 위기일 때 오히려 투자를 늘리는 건 처음이 아니다. 2012년 SK하이닉스가 2000억 원대 적자를 기록했을 때 오히려 투자금을 전년 대비 10% 이상 늘리며 D램 시장 세계 2위의 기반을 닦았다.
재계 관계자는 “SK그룹은 위기 때 오히려 대규모 투자에 나서면서 체질을 개선해 왔다”며 “반도체 시황이 개선되고 대규모 수주 잔액이 쌓인 전기차용 배터리 납품이 이뤄지면 그룹 실적도 대폭 개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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