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이 불지른 짐바브웨 시위… 실탄 진압에 유혈사태 확산

무가베 37년 독재 끝냈지만 실업-물가상승에 국민들 고통
기름값 2배 올리자 反정부시위… 군경 무자비한 진압에 시위 격화
열흘 넘게 이어지며 수백명 사상

해외 순방 중이던 에머슨 음낭가과 짐바브웨 대통령(앞)이 21일 소요 사태 해결을 위해 급거 귀국했다. 하라레=AP 뉴시스

‘L당 3740원(약 3.31달러).’

남아프리카 짐바브웨 정부가 이달 12일 발표한 휘발유 가격이다. 지난해 말 1.5달러 안팎에 불과했던 가격을 한 번에 2배 이상으로 올렸다. L당 평균 1349원(13일 기준)인 한국 휘발유 가격과 비교해도 무려 2.7배나 높은 수준이다. 기름값 상승에 분노한 시민들은 거리에 쏟아져 나왔다.

21일 현지 매체 이스트아프리칸 등은 “짐바브웨 반정부시위가 열흘 넘게 이어지며 도시 곳곳이 ‘화약고’로 변하고 있다. 해외 순방 중이던 에머슨 음낭가과 대통령도 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참석 계획을 취소하고 귀국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짐바브웨는 현재 나라 전체가 반정부 시위로 마비됐다. 실탄으로 무장한 경찰과 군인이 무자비하게 시위를 진압하며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붓고 있다. 열흘 동안 사망자는 12명, 부상자도 수백 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짐바브웨 의사협회는 “이미 수백 명이 총에 맞아 죽거나 부상했다”고 밝혔다.

18일 짐바브웨 최대 통신회사인 에코넷은 고객에게 정부 지시에 따라 인터넷 접근을 제한한다고 밝혔다. 짐바브웨 인권단체들은 “시위 진압 과정에서 벌어지는 경찰과 군인들의 인권 유린 행위를 은폐하기 위한 시도”라며 “정부군은 이미 시민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실탄을 발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재 시위대와 경찰, 군인 모두 폭력적이긴 마찬가지다. 반정부 시위대는 상점을 약탈하고 공공시설물을 파괴하고 있다. 철로에서 기차를 끌어내 주요 도로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자동차 타이어와 물건을 태우면서 정부군과 맞서고 있다. 시위대의 폭행으로 짐바브웨 경찰 1명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언론은 “높은 실업률과 물가 상승 등 수년간 좌절감을 겪어온 젊은 시위대가 실탄을 쏘는 정부군과 맞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짐바브웨는 2017년 11월 로버트 무가베 전 대통령이 군부 쿠데타로 퇴진하면서 37년의 장기 독재를 마쳤다. 그러나 음낭가과 대통령이 집권을 시작한 뒤에도 외화 부족, 높은 실업률 등으로 경제 사정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2013년 4억4200만 달러(약 4998억 원)였던 정부 부채는 지난해 105억 달러(약 11조8734억 원)까지 늘었다. 짐바브웨 현지에서는 음낭가과 대통령이 무가베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다는 점을 들어 “낡은 택시 운전대를 잡은 새 운전사에 불과하다”는 냉소적 평가도 나온다.

짐바브웨 정부는 당분간 ‘강경 진압’을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짐바브웨 정부 대변인은 국영 매체 선데이메일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시위는 기름값 상승과는 무관하다”며 “일부 폭력적 시위를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짐바브웨 정부는 21일까지 야당 국회의원, 노동조합 간부 등 600명 이상을 체포했다. 반정부 시위대도 현 상태에서는 시위를 멈출 계획이 없다. 이들은 23∼25일 두 번째 파업 및 대규모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

카이로=서동일 특파원 d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