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동정민]로잔에서 스톡홀름… 격변의 한반도 1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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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민 파리 특파원
동정민 파리 특파원
정확히 1년 전인 지난해 1월 20일 기자는 스위스 로잔 올림픽박물관에 있었다.

그 자리에서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과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일국 북한 체육상은 평창 겨울올림픽 북한 참가와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을 발표했다. 국내 여론은 그리 좋지 않았다. “올림픽 때만 반짝하는 단일팀 쇼”라는 불신이 컸고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팀 대표의 기회 박탈, 올림픽 기간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 제안을 둘러싼 대북 저자세 논란도 일었다. 지나고 보니 평창 겨울올림픽이 남북 간, 북-미 간 대화의 훈풍을 알리는 출발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1년 후인 지금은 스웨덴 스톡홀름에 와 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과 미국, 한국 대표단의 실무협상을 취재하기 위해서다. 10개월 전에도 이곳에 온 적이 있다. 당시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스웨덴 정부와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3명의 석방을 논의했다.

그러고 보면 북한의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 발표 이후 1년 동안 한반도는 대격변의 시기를 지나왔다. 남북 정상이 세 차례나 만났다. 백두산에 함께 올랐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미 정상도 만났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4번이나 북-중 정상회담을 했다. 불과 1년 전 오늘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21일 들렀던 주스웨덴 북한대사관의 뒷마당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굳게 닫힌 철문, 블라인드로 완전히 가려진 창문은 다른 곳에 있는 북한대사관들의 트레이드마크인 셈이지만, 이곳의 느낌은 사뭇 달랐다. 중립국인 스웨덴 주재 북한대사관이라 더 자유로운 측면도 있겠지만 남북, 북-미 해빙 무드도 한몫하는 듯하다. 유럽의 남북 대사들이 사진을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는 일도 이젠 다반사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19일부터 21일까지 스톡홀름에서 남한과 북한, 미국 대표단이 다섯 끼를 같이 먹으며 합숙 협상을 벌인 것도 상징적인 모습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 일본 기자는 “어떻게 미국과 북한 대표단이 한곳에서 잠을 잘 수 있느냐”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북-미 정상회담 논의에 한국이 중재 역할을 하며 참가한 것도 평가할 만하다.

1년 동안 숨 가쁘게 달려오면서 남북, 북-미 간 정상 및 실무 차원의 신뢰도 한층 더 쌓였고, 비핵화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는 데도 성공했다. 그러나 ‘신뢰’와 ‘선언’이라는 무형의 자산을 걷어내면 한반도 정책 목표인 비핵화와 관련한 실질적인 변화는 많지 않다. 유럽 국가들은 김 위원장의 핵 폐기 선언에 “아직은 말뿐”이라며 제재를 강조하고 있다.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는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도 21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프랑스국제관계연구소(IFRI) 초청 세미나에서 “두 번째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두 지도자가 구체적인 문제로 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핵 폐기와 미국의 대북제재 해제 액션을 논의하는 2차 회담의 사전 논의는 선언에 방점을 둔 1차 북-미 정상회담 때보다 속도가 더디다.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도 화끈했던 말처럼 일사천리로 가지 못하고,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의 유럽 순방 최고 성과였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전망도 당분간은 힘들어 보인다.

한국과 북한, 미국 모두 막상 행동으로 옮기려니 반세기 넘는 적대적 역사의 깊은 골과, 가보지 않은 낯선 길에 대한 두려움에 머뭇거리나 보다. 이런 때일수록 가야 할 확고한 길은 바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이라는 데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스톡홀름에서 동정민 파리 특파원 ditto@donga.com
#북-미 정상회담#스웨덴 스톡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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