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방위비 마지노선 10억달러 통첩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23일 03시 00분


코멘트

해리스, 지시 받고 靑 찾아가 요구… 정의용, 9999억원 제시 거부당해
유효기한도 “1년” “안된다” 평행선, 주한미군 흔들… 동맹 균열 위기

문재인 정부의 북핵 ‘다 걸기’ 외교 속에 감춰졌던 위태위태한 한미동맹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해 12월 28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찾아가 주한미군 주둔을 위한 방위비 분담금의 최종 마지노선으로 10억 달러(약 1조1300억 원)를 요구하며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의 법적 근간인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다른 방식으로 이행하겠다고 말했다고 정부가 확인했다. (본보 22일자 A1·3면 참조)

지난해 분담금은 9602억 원. 이에 정 실장은 “1조 원 이상은 안 된다”며 9999억 원을 제시했고 해리스 대사는 거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해리스 대사의 제안을 포함해 지난해 분담금 협상 고비마다 직접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임박한 가운데 분담금을 둘러싼 한미 간 균열 징후가 감지되면서, 이 문제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물론이고 주한미군 등 한미 연합 전력에도 영향을 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22일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해리스 대사는 지난해 12월 28일 청와대에서 정 실장을 만나 1년 유효기한과 함께 분담금 10억 달러를 제시했다. 지난해 분담금 9602억 원보다 17% 인상된 금액을 최후 통첩한 것. 정 실장은 1년 유효기한은 물론 액수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9999억 원을 제시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협상 때마다 직접 지시하며 고강도 압박에 나섰다. 협상 상황을 알고 있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초기엔 16억 달러(약 1조8015억 원), 12억 달러(약 1조3600억 원)를 잇달아 제시했다가 이를 한국이 받아들이지 않자 특명(direct order)을 내려 협상을 중단시켰다”고 말했다. 협상 초기 미국에서 16억 달러를 요구하자 우리 측 협상팀은 “이게 무슨 동맹이냐”며 항의했다고 한다.

정부는 다음 달 말로 예정된 2차 북-미 정상회담 전까지는 어떻게든 분담금 협상을 마무리할 계획이지만, 결국 한미 정상 간 담판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정부가 비핵화라는 한배를 탄 미국이 설마 주한미군까지 협상 테이블에 올리지는 않을 것이란 낙관론에 기대다가 벼랑 끝에 몰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교 원로들은 더 늦기 전에 양측이 수용 가능한 선에서 접점을 찾으라고 조언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 일각에서도 “한미 모두 파국은 피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 만큼 2차 북-미 회담 전까지는 한미가 각자의 제안액 사이에서 극적으로 절충점을 찾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공로명 전 외무부 장관은 “방위비 분담금 문제는 액수보다 한미동맹과 안보 영향이라는 큰 문제를 보면서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효주 hjson@donga.com·신나리·문병기 기자
#트럼프#방위비 마지노선#10억달러 통첩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