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해상초계기가 또다시 우리 해군 함정에 저공 위협 비행을 감행하면서 한일 군사 갈등이 양국 수교 이후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군 당국은 일본 초계기가 유례없는 초저고도 위협 비행을 한 의도와 배경을 면밀히 분석하는 한편 사태 재발을 위한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 20여 차례 경고 통신 묵살하고 초저고도 비행
23일 오전 10시 50분경 이어도 서남방 96km 해상. 인근에서 작전 중이던 우리 구축함 대조영함의 대공 레이더에 미상의 항공기가 포착됐다. 잠시 뒤 함정의 피아식별장치에 일본 해상자위대의 초계기(P-3C)라는 식별부호가 떴다. 이후로도 일본 초계기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대조영함을 밀착마크하듯이 따라붙었다.
대조영함도 차츰 거리를 좁히며 쫓아오는 일본 초계기의 항적을 분초 단위로 주시하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한 달 전 동해상에서 북한 조난어선을 구조하던 우리 구축함(광개토대왕함)에 저공 위협 비행을 한 것과 같은 돌발 상황이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기 때문이다.
오후 1시 50분경 일본 초계기는 예상대로 대조영함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대조영함에서 “귀국은 우리 쪽으로 접근하고 있다. 경로를 이탈하라. 더 이상 접근하면 자위권적인 조치를 취하겠다”는 경고 통신을 20여 차례나 보냈지만 일본 초계기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이에 우리 해군작전사령부는 한일 직통망을 통해 일본 해상자위대에 강력 항의하고,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하지만 일본은 “우군국(우방국)이며 식별할 수 있는 항공기에 대해 자위권적 조치를 취한다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며 철회를 요망한다”며 맞받아쳤다.
그 시각 대조영함에서 540m 떨어진 곳까지 접근해 주변 상공을 빙빙 돌던 초계기는 거침없이 60∼70m 고도까지 내려와 선체 뒤편에서 앞쪽으로 스치듯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쿠쿵’ 하는 초계기의 비행 굉음과 충격파가 대조영함 승조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한 달 전 광개토대왕함에 대한 저공 위협 비행(150여 m) 때보다 훨씬 낮은 고도까지 내려온 것. 군 관계자는 “지난해 12월(저공 위협 비행)과 유사하게 함선을 향한 비행, 공격 모의 비행, 함정 선수를 횡단하는 비행 등 일본에서도 관행적으로 금지되는 비행 패턴을 보였다”고 말했다. 앞서 일본 초계기는 18일에 율곡이이함(구축함)과 22일에는 노적봉함(상륙함), 소양함(군수지원함)을 향해서도 저고도 근접 위협 비행을 했지만 거리가 1.8∼3.6km가량 떨어져 있었고 비행 패턴도 의도성을 확인하기는 애매해 공개하지 않았다고 군은 설명했다. ○ 사격통제레이더 사용 유도했나
일본 초계기의 초저고도 위협 비행에는 모종의 노림수가 담긴 것으로 군은 보고 있다 우선 한국 함정이 사격통제레이더(STIR-180)를 쓰도록 유도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은 한 달 전 동해상에서 광개토대왕함이 화기관제(사격통제)레이더를 먼저 조사(照射)해 자국 초계기가 저공비행을 했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우리 측이 실무협의에서 레이더의 구체적 정보를 요구하자 일본은 이를 거부하며 초계기가 포착했다는 출처 불명의 레이더 전자파음을 21일 공개하면서 같은 주장을 반복했다. 군 관계자는 “이번에 대조영함이 레이더를 가동했다면 21일 공개한 전자파음과 비교해 자신의 주장이 정당하다고 주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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