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에 겐자부로-후루이 요시키치, 소설-언어-노년기에 대해 대화
여든 넘은 두 동년배 작가의 뜨겁고 겸손한 삶의 자세 드러나
읽고 쓰는 행위로 존재하는 이들의 ‘말년 대화록’이다. 일본 문학의 거장 오에 겐자부로(84)와 후루이 요시키치(82)가 1993년부터 2015년까지 다섯 차례 만나 나눈 대담을 엮었다. 죽는 날까지 언어 문학과 씨름하는 동년배 작가. 대담은 때때로 자신에게 건네는 밀어처럼 느껴진다. 상대를 향한 존중과 애처로움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각 만남에는 ‘명쾌하며 난해한 말’ ‘100년의 단편소설을 읽다’ ‘시를 읽다, 시간을 바라보다’ ‘말의 우주에서 헤매고, 카오스를 건너다’ ‘문학의 전승’이란 제목이 붙었다.
첫 장은 대화의 형식을 취한 문학 언어에 대한 비평에 가깝다. ‘명쾌한 말이 어떻게 난해해지는가 하면, 말이 그 사람 자신의 형태를 갖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오에) ‘소설이라는 것은 아무리 암담하고 해결 불가능한 것을 써도 저절로 형태가 성담에 다가가는 낙천적인 것을 내재하고 있습니다’(후루이) ‘설명적이면서도 명쾌한 말’에 다가가기 위한 두 거장의 처절한 노력이 주는 여운이 짙다.
2장에서는 일본 근현대 단편소설 35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다자이 오사무, 미시마 유키오 등 익숙한 이름도 있지만 대부분 낯선 작가와 작품들이다. 하지만 거장들의 ‘단호박’ 비평은 작품을 찾아 읽고픈 ‘역주행 의지’를 부른다. ‘(젊은 작가들은) 억지로 결합시키는 우직한 수단을 써서 완성한 단편 하나를 내본다는 마음이 없는 것 같다’(오에)는 일침이 인상적이다.
3장에서는 외국어 텍스트에 대한 논의가 이어진다. 독문학자로 여러 작품을 번역한 후루이는 이렇게 토로한다. ‘쓰는 사람은 심연을 슬쩍 비치는 데까지만 이른다. …번역할 생각이라면 그 앞에서 멈춰버리고 만다. 그 앞은 아마 언어가 감당할 수 없는 곳이 아닌가 싶다’라고. 4, 5장에서는 문학의 바다를 항해한다. 작가로서의 산통에 대한 이야기도 담겼다.
문학 이야기 틈틈이 인생 이야기도 끼어든다. ‘노년을 덮치는 황홀감, 노년을 덮치는 환희도 있지 않을까…’(후루이), ‘체념도 달성감도 없이 그저 이런 것을 스물두 살부터 70대 중반까지 계속해왔구나’(오에). 릴케, 말라르메, 네이딘 고디머, 프랑스의 미셸 투르니에, 로베르트 무질…. 50여 년간 문학 거장이 탐독한 작품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백미는 말년의 뜨거움과 겸손함이다. 여든 넘어서까지 펄펄 끓는 열정으로 라틴어를 공부하고 시 쓰기를 꿈꾸는 한편 ‘넘어지는 인간’이 된 자신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두 사람. ‘이런 이야기를 해두면 이런 늙은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젊은 사람들도 다소는 알아주겠지요.’(후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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