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지형에 대한 인식이 여론 형성 자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소위 밴드왜건과 언더도그 효과다. 여론조사가 중요한 이유다. 그러나 정치 환경이 양극단화하면서 한 대통령의 지지율 추정 값도 지지층은 ‘과소 추정’, 반대층은 ‘과대 추정’됐다고 믿는다.
여론조사는 이러한 ‘선택적 인식’과 ‘에코 체임버’ 효과로 인한 오류를 교정하는 역할을 한다. 에코 체임버 효과는 사람이 자기와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며 그런 의견이 다수라고 일반화하는 오류를 말한다. 그러나 조사들의 일관성이 낮다 보니 각자의 입맛에 맞는 결과만을 인용하면서 잘못된 인식이 오히려 증폭된다. 유권자의 오류를 교정하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기는 상황이다.
개별 여론조사에서 오차가 생기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특정 조사기관이 일관되게 한 방향으로 타 조사기관들과 서로 다른 결과를 제시한다면 이는 해당 조사기관의 결과에 왜곡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필자는 매주 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등록된 조사 결과 전수를 취합, 분석해 대통령 지지율 추정 값을 발표한다. 이때 각 조사기관이 가진 고유한 왜곡을 보정한 후 지지율을 추정한다. 이 방식으로 2017년 대선 당시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 직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실제 득표율을 거의 오차 없이 예측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각 기관이 가진 왜곡 정도를 추정하게 된다.
분석 대상은 여론조사업체 24곳으로 지지율을 높게 추정한 순으로 A∼X사로 표시했다. 우선 대통령 지지율을 가장 높게 추정하는 A사는 평균적 추세선보다 +7.1%포인트 정도 높게 추정한 반면 가장 낮게 추정하는 X사의 경우 6.9%포인트 정도 낮게 추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같은 주에 A사와 X사가 대통령 지지율을 발표한다면 14.0%포인트 정도의 차이를 보일 것이란 얘기다.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이 생길 만하다.
실제로 A사는 지난해 9월 4주 차 대통령 지지율을 75.9%로 발표했다. 반면 S사는 65.3%, N사는 63.8%로 발표했다. 타 기관보다 무려 10%포인트 이상 높게 추정한 것이다. 10월 3주 차에도 A사는 68.2%, S사와 L사는 각각 60.4%, 62.0%로 발표했다. X사는 반대였다. X사는 지난해 11월 1주 차 대통령 지지율을 43.7%로 추정한 반면 S사와 L사는 55.4%와 54.0%로 추정했다. 12월 1주 차에도 X사는 43.2%로 추정해 S사(48.4%)와 L사(53.0%)보다 최대 10%포인트 가까이 낮았다.
소위 메이저 조사기관들은 나을까? 기준이 모호하지만 지상파 방송사의 출구조사를 맡는 기관들이 메이저급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서 지상파 출구조사를 맡았던 세 업체 중 C사는 대통령 지지율을 5.6%포인트 정도 높게 추정하고 있다. 분석 대상인 24개 기관 중 3번째로 과대 추정 정도가 컸다. 메이저급임에도 왜곡 정도가 상당한 것이다. 다른 두 출구조사 업체인 J사와 K사도 각각 3.2%포인트, 2.5%포인트 정도 평균 추세선보다 높게 대통령 지지율을 추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기관별 왜곡이 의도적이거나 정파성에 기인한다고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실제로 대통령 지지율을 가장 높게 추정하고 있는 A사도 2012년 대선 때는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의 지지율을 타 기관들보다 비교적 높게 추정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업체인 U사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을 평균보다 비교적 낮게(―1.6%포인트) 추정하고 있으나 2012년 대선 당시에는 문 후보의 지지율을 비교적 높게 추정했다. 그러나 의도적이든 아니든 지속적으로 타 기관들과 다른 결과를 내놓으면서 아무런 방법론적 변화를 꾀하지 않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조사 결과 도출 및 발표는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영역이다. 반면 ‘시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은 반드시 조성돼야 한다. 즉, 납득할 만한 조사 결과를 내놓는 조사기관들이 유권자들의 신뢰를 받는 환경이어야 한다. 아니면 조사업계 전체의 신뢰 추락으로 귀결될 것이다. 유권자들도 각 조사기관이 제시하는 결과를 유심히 트래킹하면서 여론을 추론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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