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오래 살다 보니 길거리에서 사람들의 옷 스타일과 화장만 봐도 대충 어떤 패션이 유행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됐다. 굳이 밖에 나가지 않고도 TV 속 유명인이나 홈쇼핑을 통해 최근 트렌드를 쉽사리 정복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이처럼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많다. 빅데이터를 가장 잘 활용하는 나라도 역시 한국이다. 모든 것이 분명하고 명확하다 보니 연령별로, 나이별로, 지역별로 많은 사람의 관심사를 발견하기가 ‘누워서 떡 먹기’처럼 쉬워졌다. 그러나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한국인들이 트렌드 때문에 정작 필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외국인 이주민으로, 결혼이주 여성으로,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로, 청년으로 생활하기에 지칠 때가 많다. 이 많은 분류 중에 한국 사회에서 가장 어렵고 아픈 계층은 청년일 것이다. 필자 또한 이 분류에 해당하므로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정부 및 각 부처 정책 중 다문화가정을 위한 지원 사업이 축소돼선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전국에는 217개의 다문화가정 지원센터가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 센터들이 예산 문제에 부딪혀 결혼이주 여성을 위한 양질의 서비스나 교육을 진행하지 못하는 듯하다. 대부분의 센터가 조기 결혼이주 여성에게 초점을 맞춘 교육만 거의 10년 가까이 진행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한국에서 수년을 보낸 결혼이주 여성이 과연 얼마나 다문화가정 지원센터를 찾아갈지 의문이다. 결혼이주 여성에게 주변의 다문화가정 지원센터는 친정집과 같이 편하고 좋은 곳이었으면 좋겠다. 한국에서 오래 생활했다고 해서 한국인이 되는 것이 아닌 데다 한국인과의 경쟁을 이겨내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결혼이주 여성의 어려움과 아픔을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끊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한국 사회가 트렌드와 이슈에 민감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고 있는 다문화가정 지원 정책은 축소를 시키고 있다. 다문화청소년과 자녀들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한국 여성들이 갈수록 결혼과 출산을 안 해 가임률이 0.9%에 불과한 이 시점에 다문화 여성에 대한 관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
다문화가정 지원은 저출산과 고령화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결혼이주 여성의 가임률은 무려 4.8%나 된다. 행복하고 몸과 마음까지 건강한 엄마 배 속에서 건강한 아이가 태어난다는 법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결국 아이는 나라가 키우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키운다는 말을 하고 싶다.
1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매매혼 지원금 지급을 폐지하세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정부에서는 저출산, 고령화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으로 농촌에 거주하는 미혼 남성에게 500만∼1000만 원 내외의 국제결혼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해당 글에 청원동의한 수만 벌써 1만4000명이 넘는다.
필자도 국제결혼 지원금 폐지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다문화가정에 어떤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한지에 대해 정부가 전혀 인지하고 있지 못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농촌 남성들에게 이런 지원을 하는지…. 이런 지원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정부가 다문화가정에 혜택을 많이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점 또한 안타깝다.
현재 대한민국 내 다문화인 수만 300만 명이다. 앞으로도 이 수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자국민이 먹고살기 바쁘고, 다양한 사회적 이슈가 있는 오늘날 다문화가정에 대한 의견은 소수 의견일지 모른다. 그런데 결혼이주 여성들에 대한 관심은 줄었으면서도 ‘쓸데없는’ 결혼 장려금 지원은 남아 있는 현 상황이 아이러니할 뿐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트렌드가 다문화를 외면하고 싶지만 전적으로 외면하기는 아쉬운 구석이 있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결혼이주 여성들의 배 속에서 나온 아이들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한국의 정서와 삶 속에서 자라나는 자랑스러운 한국 아이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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