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8일 정기국회 시정방침 연설에서 사실상 한국에 대한 언급을 건너뛴 것은 ‘한국 외면’ 외교 전략을 구사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군 위안부 문제로 갈등을 겪던 지난해 시정연설 때 최소한 ‘협력관계’를 거론했던 것과도 달라진 것이다.
아베 총리의 시정방침 연설에 이어 외교 분야 연설에 나선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상은 한국과 관련해 “청구권협정, 위안부 합의 등 국제적 약속을 지키도록 강하게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강하게(쓰요쿠)’란 단어를 특히 강조했다. 총리 관저와 외무성 모두 한국 무시 전략을 드러낸 셈이다.
반면 북한에 대한 태도는 러브콜을 보내는 것으로 보일 정도로 180도 달라졌다. 아베 총리는 “북한의 핵·미사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상호 불신의 껍데기를 깨야 한다”며 북한과의 국교 정상화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아베 총리는 작년 시정연설에서 북한에 대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그 어느 때보다 중대하고 임박한 위협으로 (일본의) 안보환경은 전후(戰後) 가장 힘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방법으로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폐기토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이 같은 변화는 북-미 간 2차 정상회담이 추진되는 등 협상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분석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북-미 협상 추진 의사를 나타내고, 중국과 러시아 등 주요국이 모두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는 가운데 일본만 외톨이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이다.
중국에 대해서도 “작년 방중으로 중일 관계가 완전히 정상 궤도로 돌아왔다”며 “앞으로 정상 간 왕래를 반복해 정치, 경제, 문화, 스포츠, 청소년 교류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 국민 레벨에서의 교류를 심화하겠다”고 말했다. 중국을 군사대국으로 묘사하거나 경계하는 표현은 없었다.
매년 강조하던 자신의 정치적 숙원인 ‘개헌’은 간략하게만 언급했다. 아베 총리는 “국회 헌법심사회에서 각 당이 (개헌) 논의를 심화해 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각 당이 헌법의 구체적인 안을 국회에 가져와야 한다”고 강하게 개헌 드라이브를 걸었던 것과 대비된다. 개헌에 야권이 크게 반대하고 있고 연립여당인 공명당도 급격한 개헌 추진에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일 관계의 악화 속에서도 아베 내각 지지율은 급등해 50%대를 회복했다. 28일 니혼게이자이신문과 도쿄TV는 아베 내각 지지율이 53%라고 보도했다. 25∼27일 전국의 18세 이상 남녀를 대상으로 조사(990명 답변, 응답률 44.4%)한 결과로 지난해 12월 조사 때와 비교해 6%포인트 급등했다. 외교 관계자는 “한 달 만에 지지율이 크게 뛴 것은 이례적이다. 한국과 레이더 갈등이 악화하면서 국민 여론이 결집된 효과도 포함돼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