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응급구조사의 업무 범위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응급구조사는 현장에서 업무 범위의 제한 때문에 신속한 응급처치를 못 한다고 토로한다. 반면 의사와 간호사는 응급구조사의 잘못된 초기 처치가 오히려 환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서로의 주장이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합의할 수 있는 접점도 엿보인다. 그것은 “응급환자의 입장에서 최선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찾을 수 있다.
응급구조사 제도의 시작은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시작됐다. 자동차 보급의 급격한 증가로 교통사고 사상자가 대거 발생했으나 적절한 치료는 매우 미흡했다. 1966년 미국의 기념비적인 백서 ‘사고로 인한 죽음과 장애: 현대사회의 간과된 질병’에서 응급의료의 문제점과 대안이 제기됐다. 그때 응급실에서 시작하는 응급치료를 환자가 발생한 현장으로 확대해 이를 담당하는 응급구조사 직종이 생겼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잇달아 일어난 대형사고와 재난으로 응급의료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1994년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지면서 응급구조사 제도가 도입됐다. 현재 응급구조사 3만여 명이 배출돼 응급의료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난 20년간을 되돌아보면 우리나라 의료는 괄목상대한 발전을 이뤘다. 이는 의학 기술의 성장 못지않게 인증제도의 도입이 큰 역할을 했다. 의료 만족도도 주요 선진국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병원 밖 현장의 응급의료는 지난 20년 의료의 발전을 따라오지 못했다. 이제 현장 응급의료의 운영체계, 구성 인력의 역할과 전문성에 대해 과학적으로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응급구조사의 업무 범위와 수행 능력에 대한 진단과 발전 방안의 모색이 필요하다.
응급구조사의 업무 범위는 처음 법이 제정될 때부터 지금까지 20년간 기도 유지 등 총 14가지로 정하고 있다. 최근 심근경색 환자의 증가는 안전성이 인정된 현장 12유도 심전도의 측정과 전송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심정지 환자와 아나필락시스(급성 알레르기 반응) 쇼크 환자에게 에피네프린(호르몬과 세포신호전달물질)의 현장 투여도 필요하다. 이처럼 현장에서 유효성과 안전성이 인정된 검사와 처치는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에 포함시켜야 한다.
다만 응급구조사의 업무 범위 확대 이전에 현장에서 활동하는 응급구조사, 119구급대원의 전문성을 보장하는 교육과 훈련이 필수적이다. 또 무선이나 영상통화를 활용해 실시간으로 의사에 의한 직접 의료지도와 응급처치 지침 및 질 관리 활동을 통한 간접 의료지도가 강화돼야 한다. 응급의료의 시작이 되는 병원 전 응급의료 체계에도 현재 의료기관에서 시행하는 인증제도에 준하는 질관리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이 요구된다.
교통사고와 심근경색으로 인한 환자의 증가는 응급실에서 머물던 응급의료를 현장까지 확장했고 응급구조사 직종이 생겨났다. 이제 현장의 응급의료를 발전시켜 더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유효성과 안전성에 기반해 응급구조사의 업무 범위 조정과 전문성 향상이 필요하다. 응급의료는 환자가 발생한 현장에서 시작하여 병원의 최종 치료까지 중단 없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하나의 흐름이어야 응급환자의 입장에서 최선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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