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만 안고 교단을 떠나셨어요. ‘학교 일은 기억도 하고 싶지 않다. 나를 찾지 마라’면서…. 꼬박 1년간 학부모와 법정다툼을 하느라 맘고생이 심했을 겁니다. 오죽하면 정년도 마다하고 그만두셨겠어요.”
최근 서울 서초구의 한 중학교에서 명예퇴직한 교장선생님을 지켜본 교사가 안타까움을 담아 이렇게 말했다. 앞서 이 학교 학부모들은 “학교폭력 처분 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며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벌였다.
서울 강남 8학군의 한 고교에서도 교장과 교감이 다음 달 동시에 퇴직하기로 했다. 두 사람 모두 정년을 1년 정도 남겨둔 상황이다. 교단을 떠나는 교사가 급증하면서 교육계가 술렁이고 있다.
28일 교육부와 각 시도교육청에 따르면 2월 명예퇴직을 승인받은 초중고교 교원은 총 6039명이다. 지난해 1년간 명퇴한 교사(6143명)와 비슷한 규모다(표 참조). 서울만 보더라도 올 2월 명예퇴직을 승인받은 중고교 교사는 1367명으로 지난해 한 해 전체 명퇴자 수(1439명)와 맞먹는다. 이른바 ‘교육특구’로 불리는 강남 송파 지역의 학교도 다르지 않다.
교육계는 선망의 직업이던 교사들의 ‘명퇴 러시’가 학부모 민원 급증에 따른 업무 증가와 교권 추락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학교폭력이 일어났을 때 각자의 자녀 말만 믿고 심한 감정싸움으로 번지거나 급기야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는 일도 잦다. 서울의 한 고교 교감은 “학교폭력, 벌점 부과 같은 사안을 두고 학부모들이 항의하러 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주 업무가 가르침이 아니라 민원 처리’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 따르면 교사들이 학생 지도나 학교폭력 처리 과정에서 학부모로부터 소송을 당해 법률 자문을 요청하는 사례가 매년 10건 이상씩 늘고 있다. 조성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법정 다툼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교사들이 소송전에 휘말리면 큰 충격을 받는다”며 “교직에 보람을 잃고 학교를 떠나는 이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고뿐만이 아니다. 특성화고의 교사 명퇴도 크게 늘고 있다. 서울시내 공립고 중 명퇴 교사가 가장 많은 곳은 특성화고인 경기기계공고(10명)다. 덕수고(8명)와 서울공고(4명), 서울도시과학기술고(4명)를 포함해 2월 서울지역 명퇴 상위 10개교 중 4곳이 특성화고다.
특성화고에서는 신입생 유치와 재학생 취업 알선의 피로감이 교사들을 명퇴로 내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특성화고의 현장실습 기준이 엄격해지면서 조기 취업이 어려워졌다. 올해 정년 6년을 남겨두고 6월 명퇴하는 특성화고 교사 C 씨(56)는 “최저임금 상승까지 겹치면서 취업을 포기한 학생이 많다”며 “그 아이들의 취업 실적을 책임져야 하는 데다 학생 지도도 쉽지 않다 보니 ‘너무 힘들다’는 생각만 들었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교원의 명퇴 러시를 막으려면 무엇보다 교사 권리 회복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학생들의 인권 의식이 높아짐에 따라 과거와 같은 훈육 방식은 달라져야 하지만 생활지도가 불가능할 정도로 교권이 땅에 떨어지는 현실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에게 진학과 취업을 모두 책임지게 하는 과도한 업무 구조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화여대 교육학과 정제영 교수는 “교사의 권위가 크게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학교 규칙과 교권에 대한 엄격한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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