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4조1000억 원 규모의 23개 사업 예타 면제 결정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부가 연초부터 경제 활력 되살리기에 ‘다걸기(올인)’하고 나선 가운데 이번 예타 면제가 경제 사정을 고려한 특별한 조치라는 점을 강조한 것. 정부가 앞세운 예타 면제의 가장 큰 명분은 균형발전이다.
하지만 출범 후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시대착오적 토건사업이라고 비판해온 문재인 정부가 정작 예타 면제로 대규모 SOC 투자에 나섰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게 됐다. 그 배경엔 악화된 경제지표를 어떻게든 만회하겠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는 게 중론이다.
○ 예타 면제 SOC 사업만 20조 넘어
정부가 이날 발표한 예타 면제 사업 가운데 SOC 투자 관련 사업비는 총 20조5000억 원. 올해 국회에서 확정된 전체 SOC 예산(19조7000억 원)과 비슷한 규모다. 남부내륙철도(4조7000억 원) 등 사업비가 1조 원이 넘는 공사만 해도 8개에 이른다.
문 대통령이 예타 면제를 처음 공개적으로 거론한 것은 지난해 12월 13일 경남 창원시에서 열린 ‘중소기업 스마트 제조혁신 전략보고회’에서다. 문 대통령은 당시 “남부내륙철도는 지역경제 활력을 제고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를 곧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여권 관계자는 “지난해 6월 지방선거 이후 더불어민주당 출신 지방자치단체장 등을 중심으로 예타에 대한 문제 제기가 많았다”며 “김경수 경남도지사도 앞장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번 조치가 경제지표를 끌어올리기 위한 긴급 처방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2012년(2.3%) 이후 가장 낮은 2.7%에 그친 것은 SOC 투자 등이 줄어들면서 건설투자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폭인 4.0% 뒷걸음질을 친 영향이 크다고 보고 있다. 가뜩이나 올해 경제 전망이 암울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마을 도서관 건설 등 생활SOC 사업만으로는 건설 경기를 메우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얘기다.
○ 시민단체 “MB 정부 예타 면제 넘어설 수도”
시민단체들은 이날 예타 면제 발표를 대부분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후 지금까지 예타를 면제해준 사업은 29조5927억 원. 이날 발표된 예타 면제 사업비를 더하면 총 53조7000억 원으로 이명박(MB) 정부 5년 동안 예타 면제 사업비(60조3000억 원)와 비슷한 수준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문재인 정부가 과거 토건 적폐로 비판했던 이명박 정부의 예타 면제를 따라하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는 임기 중 이명박 정부 때 예타 면제 규모인 60조 원을 넘어 최대치를 경신할 것”이라고 했다. 환경부 4대강 조사평가단 민간위원장을 맡고 있는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페이스북에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을 격렬히 성토했던 현 정권이 수십조 원에 달하는 사업의 예타 면제를 추진한다는 보도에 말문이 막힌다”며 “천문학적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국책 사업의 절차적 정당성을 담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예타를 건너뛰어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소식 앞에 망연자실하다”고 적었다.
이와 관련해 홍 부총리는 “과거 (정권) 사업과 다르게 하기 위해 지역 전략 사업을 육성하거나 국민 삶의 질에 대한 사업을 포함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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