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풍’ 팰리세이드 개발 뒷이야기… 큰 SUV 찾는 아빠들이 주고객층
날렵한 외관 중시 디자이너와 조율, 짐 싣고 내리는 것까지 체험해 반영
컵홀더 16개-USB포트 6개로 넉넉… 가족 지키는 강인한 車 이미지 구현
“경쟁사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타고 2016년 4월 미국 대륙을 가로지르는 3주 내내, 디자이너는 제일 뒤쪽 3열 좌석에만 앉았습니다.”
21일 경기 화성시 현대·기아자동차 남양연구소에서 만난 허재호 현대차 중대형RV(레저용차량)총괄PM(프로젝트매니저)실장은 이렇게 얘기를 시작했다. 허 실장은 지난해 12월 출시된 현대차의 대형 SUV 팰리세이드 개발총괄자다.
3열 좌석은 보통 대형 SUV에서 승차감이 가장 나쁜 자리다. 좁고 등받이도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디자이너가 이 자리에 앉아봐야 기능과 디자인이 결합된 제대로 된 제품이 나올 수 있다. 실제로 차를 설계하다 보면 예쁜 겉모습을 만들려는 디자인팀의 욕심과 내부를 키워야 하는 공간상의 요구가 종종 충돌한다. 외관을 날렵하게 뽑아내려면 내부 공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개발팀은 디자이너와 미국 곳곳을 돌며 북미시장 고객이 마트에서 짐을 어떻게 싣고 내리는지, 3열 공간의 크기가 왜 충분히 확보돼야 하는지를 몸으로 느끼고 디자인에 반영토록 했다.
팰리세이드 개발팀이 공간 확보에 사활을 건 이유는 SUV 핵심 수요층의 요구 때문이었다. 중대형 SUV의 부재로 미국시장에서 고전하던 현대차는 2015년 팰리세이드의 개발에 들어가면서 수요층에 대한 사전조사에 나섰다.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설문에 나선 개발팀이 찾아낸 핵심 키워드는 ‘가족을 위해 공간이 넓은 SUV를 찾는 아빠’였다. 다자녀인 집이 많고 여행을 자주 다니는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여가활동이 늘어나면서 대형 SUV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많았다. 개발팀은 널찍한 3열 공간이 팰리세이드가 성공하기 위한 핵심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허 실장은 “디자인을 위해 외관을 날카롭게 잘라내면 공간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데 디자인팀이 양보해준 일이 지금도 고맙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경에 완성 단계의 차를 시승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도 넓어진 공간감에 흡족해했다. 정 부회장은 ‘현대차의 플래그십(최고급) SUV다운 내부 인테리어’를 추가하도록 주문했다. 내장재의 촉감을 고급스럽게 바꾸고 내부 조명의 톤과 모터 소음을 조정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팰리세이드가 출시된 이후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 좌석 여기저기에 설치된 컵 홀더가 16개나 되고 스마트 기기를 충전할 수 있는 범용직렬버스(USB)포트가 6개라는 사실에 크게 만족하는 반응이 나오면서 단연 화제가 됐다.
정면 라디에이터 그릴의 무늬를 키우고 안쪽으로 깊게 파내면서 강인한 차량 이미지를 만들어낸 구민철 현대차 외장디자인실장은 “가족을 지켜주는 강인한 차라는 인상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주행 성능에서도 모래길 진흙길 눈길을 달릴 때 선택하는 험로 주행 기능(터레인 모드)이 추가됐다. 송군호 차량시스템개발실장은 “가족을 위한 차이지만 거친 길도 달릴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도 있었다. 이런 복잡 미묘한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주말에는 ‘다정한 아빠’를, 평일에는 ‘강인한 남자’를 위한 차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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