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투 쓰기 좋아하는 국회의원들에게도 피하고 싶은 자리가 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간사가 그렇다. 인기 상임위원회는 간사를 두고 재선 의원들도 경쟁하는데 정개특위 간사는 초선들도 꺼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힘만 들고 실익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정개특위는 대개 구성 단계부터 힘을 잔뜩 뺀다. 우여곡절 끝에 특위가 출범하면 이전에 합의했던 내용을 다시 논의하고 재탕하느라 또 진을 뺀다. 활동 기한 막판에 합의안 비슷한 게 나와도 서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조정하기가 어렵다. 결국 코앞에 닥친 선거의 선거구만 미세 조정하고 빈손으로 마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치개혁에 앞장섰다’고 홍보하지만 지역구에서 “잘했다”는 평가를 듣기도 어렵다. 여기에 특별활동비(특활비)가 대폭 줄어들면서 금전적 혜택조차 사라졌단다. 정개특위 간사를 할 시간에 지역구라도 한 번 더 가는 게 다음 선거에 훨씬 유리하다.
설령 운 좋게 성과를 내더라도 욕먹을 가능성도 높다.
정치개혁을 하려면 누군가는 기득권을 내려놔야 한다. 예컨대 여당의 선거제 개편안대로 지역구를 현재 253석에서 200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를 100석으로 늘리면 현역 의원 누군가는 애지중지 다져온 지역구를 내놓을 처지가 된다. 이럴 땐 같은 당 의원들에게도 비난의 화살을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정개특위에서 활동했던 한 의원은 “열심히 하다 실세나 동료 의원들에게 찍히지 말라는 말을 적지 않게 들었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정개특위 주변엔 회의론이 가득하다. 뭘 하려고 해도 “어차피 안 될 텐데” 하는 패배의식 비슷한 게 있다는 얘기다. 정개특위 여당 간사인 김종민 의원은 “많은 걸 포기하고 두 달간 치열한 토론 끝에 개혁안을 만들자마자 ‘위장 개혁안’이라고 몰더라. 이런 정치풍토에 한숨만 나온다”고 토로했다.
여야가 지난해 말 의욕적으로 합의했던 선거제 개편은 이번에도 녹록지 않은 분위기다. 1월 안에 선거구제 개혁안을 만들자는 5당 원내대표의 약속은 공수표가 된 지 오래다. 자유한국당의 전당대회가 예정된 2월엔 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소수당인 정의당의 심상정 의원에게 정개특위 위원장을 맡긴 것도 결국 쇼라는 말도 들려온다.
이번에도 실패가 불 보듯 뻔하다면 기존과는 다른 해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국회의 주인인 국민에게 직접 선거제도를 뜯어고치게 하자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시도된 공론화위원회에서 개혁안을 도출하고 국민투표로 최종 승인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 캐나다 등 다른 선진국들도 사회적 기구를 통해 선거제 개혁에 성공한 적이 있다.
‘게임의 룰’을 업계 1, 2위가 정하는 분야는 거의 없다. 프로스포츠의 세계만 해도 신인 선수를 뽑는 우선 권한(드래프트)을 하위권 팀에 먼저 준다. 경쟁을 유도해 리그 전체의 흥행과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만들려는 것이다. 국민 신뢰도가 2%에 불과한 국회라면 지금보다 더 과감한 수술 도구와 새로운 룰 세팅이 필요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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