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처를 ‘규제 기관’으로만 바라보는데, 역발상이 필요합니다.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해 해외 시장 진출과 산업 성장의 디딤돌 역할을 하겠습니다.”
국민의 먹거리 안전과 건강을 책임지는 정부 부처 수장이 규제 완화 중요성을 강조하는 모습은 낯설었다. 자칫 ‘국민 안전을 소홀히 다룬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다. 하지만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60)의 소신은 확고했다. 식품·의약품 안전과 규제 완화는 상충하는 가치가 아니라 동시에 잡아야 할 ‘두 마리 토끼’라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43개 중앙행정기관 정부 업무평가에서 식약처는 규제혁신부문 1위에 올랐다. 류 처장은 30일 동아일보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먹거리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없도록 온라인 유통 제품에 대한 선제적 점검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에 ‘가짜 후기’로 소비자를 현혹하는 광고가 많다.
“단기간에 살을 뺄 수 있다거나 키가 커진다는 식품, 미세먼지 효과를 과장한 마스크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미세먼지 차단에 효과가 있다는 화장품 53개를 조사했더니 27개는 효과가 없는 제품이었다. 특히 올해는 가짜 체험 후기를 집중 단속할 계획이다. 의사 등 전문가로 외부 검증단을 구성해 효능을 부풀린 제품들을 공개할 것이다.”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음식을 주문해 먹는 사람이 늘면서 관련 업체의 위생 관리에 대한 불안도 커지고 있다.
“배달 앱에 등록된 음식점이 6만5000여 개에 달한다. 소비자가 직접 방문하지 않으니 위생 상태를 알 수 없다. 올 7월부터 배달 앱 사업자는 이물질 신고가 접수된 음식점을 식약처에 보고해야 한다. 이런 정보가 소비자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도 점검할 계획이다. 매년 한 번씩 전수조사를 통해 위생이 불량한 업체는 퇴출시킬 방침이다. 온라인 전용 슈퍼마켓 이용도 급증하고 있다. 이런 곳도 위생에 문제가 없는지 집중 점검하겠다.”
―지난해에는 고혈압약과 생리대, 백신 등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의약품 및 생활용품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일본에서 수입한 백신에서 비소가 검출돼 파문이 일었다. 그후 백신 안전대책은 강화됐나.
“유리 용기에서 나온 비소가 원인이었다. 올해 주사제용 유리용기의 비소 기준을 신설할 계획이다. 올해 12월부터는 해외에서 의약품을 수입할 때 제조업체를 사전에 등록해야 한다. 현지 실사도 나갈 계획이다. 백신의 품질관리 기준을 높이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 중이다.”
―‘케미포비아(화학제품 공포증)’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생활용품 안전에 대한 불신이 큰 상황이다.
“우선 최근 국민 불안이 큰 미세먼지 마스크의 안전 기준을 강화할 방침이다. 음식점에서 사용하는 물티슈와 일회용 면봉에 대해서도 9월부터 포름알데히드 등의 안전 기준이 신설된다. 또 생리대의 다이옥신 성분 분석과 인체 위해 평가를 위해 다음 달부터 현장 점검에 들어간다.”
류 처장은 2014년 도입한 ‘의약품 부작용 피해 구제제도’의 이용률이 낮아 안타깝다고 했다. 이는 의약품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소송을 거치지 않고 정부가 신속하게 보상해주는 제도다.
―보상을 받기까지 절차가 까다롭다고 생각해 아예 신청을 포기하는 사람이 많은 것 아닌가.
“지난해까지 350건의 피해 구제 신청이 접수돼 220건을 구제했다. 사망보상금과 장례비, 장애 보상금, 진료비 등 4개 항목에 약 48억 원이 집행됐다. 국민의 권리인 만큼 더 적극적으로 신청해주길 바란다. 올해는 보상범위를 비급여 진료비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인플루엔자(독감) 치료제인 타미플루로 인한 부작용이 생겼을 때도 신청할 수 있다.”
―식품과 의약품은 다른 분야보다 규제가 엄격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규제 완화를 강조하는 이유가 있나.
“무조건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게 아니다. 우리 기업들이 새 제품을 개발하거나 해외에 진출할 때 도움이 되도록 불필요한 허들을 없애겠다는 얘기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규제 가이드라인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일이다. 한국은 현재 3차원(3D) 프린팅 기술의 국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 향후 인공 장기 분야 등에서도 우리가 가이드라인을 선도하도록 돕겠다. 기업에 이런 명확한 기준을 만들어주는 것이 지원금을 주는 것보다 더 도움이 된다.”
―기업들과 어떻게 협업해 나갈 생각인가.
“첨단 의료기기나 바이오 의약품, 화장품 등은 연구개발(R&D) 단계부터 식약처가 참여하면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안전 문제를 먼저 꼼꼼하게 관리한 뒤 효능이 입증된 제품은 규제 장벽을 과감히 낮추면 기업에 큰 도움이 된다. 올해부터 기능성 화장품 심사 기간을 60일에서 30일로 단축하는 것도 이런 지원책의 하나다.”
―대마 성분 의약품을 두고는 오히려 너무 깐깐하게 규제한다는 지적이 있다.
“환자의 치료 기회 확대라는 취지와 다르게 이를 오·남용하는 부작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대마 성분 의약품을 수입해 공급하는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의 전담 인력을 현행 10명에서 23명으로 늘려 환자들의 불편을 줄여나가겠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