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이후 내각 개편이 예고됐다. 이번 개각은 정치인 장관들이 내년 총선 출마를 위해 당으로 복귀하고 출마를 준비할 장관들도 물러나는 만큼 꽤 큰 규모로 예상되면서 여의도에선 벌써부터 교체될 장관 자리와 후보들의 이름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런데 유독 눈에 띄는 게 통일부 장관이다.
조명균 장관이 총선에 출마할 것도 아니고 대통령의 신뢰도 여전하다는데, 그의 교체를 전제로 하마평이 난무하고 있다. 총선 변수를 빼고 교체가 거론되는 다른 부처와 달리 통일부는 지난해 정부업무평가에서 ‘우수’ 등급을 받아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물론 장관이 잘해서 그런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지만, 그럼에도 특별한 사유 없이 ‘우수’ 기관의 수장 교체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는 의아스럽다.
청와대에선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가 새로운 국면으로 바뀌면 통일부의 역할도 달라질 것인 만큼 새로운 리더십이 긴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지금까진 남북 관계의 물꼬를 트는 관리형 대북 전문가가 필요했지만, 이젠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적극적 활동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조 장관의 고분고분한 샌님 스타일을 답답하게 여겨왔고, 조 장관 스스로도 버겁다며 몇 차례 사의를 표명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래서인지 자천타천 후보로 거론되는 이들이 죄다 정치인이다. 송영길 우상호 이인영 홍익표 등 현역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이름도 여전히 나온다. 이들 중엔 총선 포기는 물론 의원 배지까지 던지겠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장관 자리 마다할 사람 없을 테고 헛물켤망정 이름 석 자 올려보자는 심산도 없지 않겠지만, 왜 하필 통일부 장관일까.
이들은 모두 86세대 운동권 출신이다. 상당수는 이른바 ‘NL 주사파’로 통하던 전대협의 핵심 세력이었다. 이들에게 남북 관계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는 것은 억누르기 힘든 열정, 일종의 로망이라고 한다. 하지만 운동권 전력이 마치 북한 전문가 경력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아가 통일부 장관직을 마치 그들이 예약해 놓은 자리처럼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그들에게 낡은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자는 게 아니다. 반공(反共)이 최상의 가치이던 시절, 그들이 던진 도발적 메시지는 이념의 굴레에 갇혀 있던 우리 사회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때 북한과의 내통 또는 북한 추종을 의심받은 그들이지만 지금도 그런 의식의 잔재가 남아 있으리라고 보지 않는다. 실제 장관을 맡으면 관료나 명망가보다 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남북 관계의 한 축은 남남(南南) 관계다. 남북이 더욱 가까워지면서 남남은 더욱 벌어지고 있는 게 지금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대북 성과 못지않게 우리 내부적으로 좌우, 여야를 아우르는 균형 감각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과연 지금이 86세대의 로망을 실현하겠다고 나설 때인가.
그들의 열망엔 통일부 장관직은 누구든, 아니 아무라도 할 수 있는 자리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 아닌가 싶다. 하긴 노무현 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을 맡아 반짝 퍼포먼스를 보여준 정치인은 대선주자까지 올랐으니 그들이라고 욕심을 못 낼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이후 전개된 남북 관계는 어땠는지, 나아가 그 정치인의 현재는 어떤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사가 만사다. 이 말을 자주 했다던 전직 대통령의 인사도 결코 성공적이지 못했지만 결국 판단은 대통령의 몫이다. 통일부 장관 인사는 대통령이 남북 관계와 남남 관계에 대해 어떤 구상을 갖고 있는지 보여줄 것이다. 86세대 정치인들도 혹시나 목을 빼고 기다리기보다는 그간 세상에 보여준 자신들의 모습이 어땠는지부터 자문해야 하지 않을까.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