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김경수 지사 1심 판결 공방…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데자뷔’
판결 수긍 못해도 절차 밟아 다퉈야… 판사 이력·성향 문제 삼는 건 잘못
정치 논리로 형사재판 공격은 위험… 대법원장이 명확한 입장 밝혀야
김경수 경남도지사에 대한 1심 판결을 놓고 세상이 시끄럽다. 여당은 ‘양승태 측근, 사법농단 세력의 조직적 저항과 보복성 재판에 매우 유감’이라며 흥분했다. 여당은 사법농단 세력 및 적폐청산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법관 탄핵까지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야당은 반색하며 김 지사의 즉각 사퇴는 물론 대선 무효까지 거론하고 나섰다.
모두 옳지 않고 우려할 일이다. 여야만 바뀌었을 뿐 과거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의 데자뷔 아닌가. 형사사법 절차는 공동체가 지켜야 할 규칙을 어긴 사람을 찾아내고 처벌하여 법률의 실효성을 확보하고 사회를 방위하는 시스템이다.
이 사건은 ‘드루킹’ 일당의 인터넷을 이용한 댓글 조작 의혹이 불거지면서 시작되었다. 김 지사가 여권의 핵심 실세였고 사건 내용에 정치적 함의가 짙었기에 여야 합의로 특별검사가 임명됐다. 수사 과정에서 허익범 특검은 김 지사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범죄 혐의가 소명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이후 특검의 기소로 재판이 진행되었고 그저께 1심 판결이 선고된 것이다.
김 지사는 항소했고 앞으로 2, 3심의 형사재판 절차가 계속 진행된다. 헌법적으로, 사법적으로 보면 현 시점에서 김 지사는 여전히 무죄로 추정된다. 유죄가 확정된 것이 아니다. 지방자치법의 규정에 따라 부지사가 권한을 대행할 뿐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각각의 이해관계에 따라 김 지사에 대한 판결을 두고 법관을 공격하거나 상대방을 비난하는 소재로 활용한다. 형사 절차가 정치에 오염되는 순간 관여하는 사람들은 매우 괴롭다. 정치 성향과 무관하게 무조건 어느 한쪽의 일방적 공격을 받는다.
검찰 재직 시 후배들에게 ‘정치 사건’은 무조건 피하고 도망가는 것이 좋다고 가르쳤다. 같은 사건을 수사하면서 야당과 여당으로부터 순차 고발이나 탄핵 소추 등의 곤욕을 겪은 적도 있다. 정치의 쓴맛은 정말 무섭다.
성창호 부장판사의 처지에 동병상련, 안타깝다. 성 판사도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 유죄인가 무죄인가, 유죄라면 어떤 형을 선고해야 하나, 실형을 선고한다면 법정구속을 할 것인가 등등 끝없는 고민과 번뇌를 거쳤으리라.
판결이 늘 옳은 것은 아니다. 반드시 승복할 필요도 없다. 불복한다면 재판 절차나 판결의 논리를 법리적 측면에서 따져야 한다. 논리를 떠나 판단자의 이력과 성향을 갖고 판단을 시비한다면 잘못된 일이다.
성 판사는 서울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마쳤고, 법관 생활을 하면서 능력이 탁월하고 인격적으로도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그의 이력 중 문제가 되는 것은 2012년부터 양승태 대법원장 비서실에 근무했다는 것인데 그 자리는 비서 업무가 아니라 전원합의체 회부 사건을 법률적으로 검토하는 직책이었다고 한다.
양 전 대법원장은 현재 구속되어 조사를 받고 있다. 그는 6년간 대법원을 맡아서 전국의 모든 법관 인사를 했다. 좋은 보직을 받았던 사람도 있고 나쁜 보직을 맡았던 사람도 있다. 그것을 갖고 시비하면 어떤 판사가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성 판사는 2016년 재판 현장에 복귀한 뒤, 2017년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2214명의 변호사가 참여한 평가에서 우수법관으로 선정되었다. 작년 7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원 특활비 수수와 공천 개입 사건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8년을 선고하기도 했다.
형사재판을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잘못 다루면 국가에 혼란을 가져올 위험성이 크다. 정치권이나 주변에서 판결을 부정하고 판사를 공격한다면 사법제도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삼권분립과 사법권의 독립을 기본 요소로 하는 대한민국 헌법질서가 파괴되는 것이다.
김 지사는 1심 판결에 승복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판결은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항소해서 증거와 법리를 다투는 것이 옳다. 선고가 끝나자마자 ‘재판장과 양 전 대법원장의 특수관계가 재판 과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감정 섞인 입장을 밝힌 것은 평소 합리적인 이미지에 비춰 상당히 아쉽다.
사법권의 독립을 수호할 책임은 1차적으로 대법원에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이 문제에 대한 사법부의 입장을 명백하게 정리해서 밝히면 좋겠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