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이상 겨울 서핑을 즐긴 김성은 씨(33)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며칠 전 서울에서 약 2시간 동안 차를 몰았다. 그가 찾은 곳은 강원 양양의 죽도해수욕장. 사전에 기상예보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전해진 파도 정보와 실제 바닷가에서 눈으로 확인한 파도의 질을 검증하는 과정을 거친 끝에 ‘파도 높이 2m, 피리어드 8초’로 예측된 최적의 포인트를 찾았다.
대체로 파도가 높고 파도 간격을 뜻하는 피리어드 수치가 클수록 서퍼들이 즐기기 좋은 ‘길고 크고 깔끔한 파도’가 올 확률이 높은 것으로 해석된다. 예보상 숫자가 큰 지점에 실제로 큰 파도가 오는지 직접 확인하는 작업은 필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안감에 기모가 달린 검은색 서핑 슈트로 무장한 김 씨는 자신의 키와 맞먹는 6피트(약 183cm) 길이의 보드를 들고 바다에 들어가 간헐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큰 파도를 따라 길게는 5초 정도 보드 위에 서서 파도를 타는 일을 반복했다. 드물고 한 번 맞이해도 매우 짧은 ‘그 순간’을 즐기러 한겨울 평일 낮 김 씨 외에 50여 명이 모였다. 이곳에 파도를 타러 온 박성훈 씨(36)는 “비록 짧지만 파도 위에 서는 순간의 희열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추위보다 재미를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양양뿐 아니라 강원 고성, 삼척 인근 등 국도 7호선을 따라 파도가 좋기로 입소문이 난 해변에는 “(날씨가) 춥고 (바람이) 매섭다”는 소문이 돌면 서핑 동호인들이 몰린다. 특히 이번 설 연휴에는 동해안 곳곳에 수천 명의 동호인들이 파도를 타러 몰려올 것으로 보인다.
1년에 최소 5차례 이상 겨울서핑을 즐기는 열성 동호인만 국내에 3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을 위한 서비스시장도 커지는 추세다. 지점별 파도 예보 서비스를 제공해 온 ‘WSB FARM’은 약 2년 전부터 캠 서비스까지 시작했다. 양양 지역 해변 곳곳이 한눈에 보이는 지점에 캠 카메라를 설치해 서핑족들이 해변의 현재 파도 상황을 볼 수 있게 했다. 집에서도 해변 상황을 체크할 수 있게 된 것. 장래홍 WSB FARM 편집장은 “미세먼지 예보 서비스처럼 파도 예보도 ‘좋음, 보통, 나쁨’ 등으로 보다 간편하게 하고 캠 설치 지역을 늘려 입문자들도 서핑을 좀 더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9월에는 서핑 동호인들이 십시일반으로 제작비를 모아 만든 단편영화 ‘윈터서프 2’가 자연 소재 영화를 다룬 울주세계산악영화제 본선에 올랐다. 영상 제작이 본업인 김성은 씨가 지난해 겨울 양양에 수개월간 상주하며 쉽게 보기 힘든 3m 이상의 큰 파도를 즐기는 서퍼들의 모습을 담았다. 김 씨는 “그간 인도네시아 발리 등 해외 서핑 천국에 비해 한국에는 큰 파도가 없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매일 바다를 관찰하며 큰 파도가 치던 순간을 담았는데, 영화제 이후 국외에도 입소문이 나며 한국의 겨울바다를 찾는 외국인이 늘었다”고 말했다.
대중적인 인기 속에 서핑은 2020년 도쿄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됐다. 2022년 중국 항저우에서 열릴 아시아경기에서도 서핑의 종목 채택 여부를 검토 중이다.
이에 따라 국내 서핑업계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선수 후원과 함께 국내 엘리트 선수들에게 체계적인 훈련 기회도 제공되는 분위기다. 한국 여자 서핑의 간판 임수정(24·서프코드)은 지난해 5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아시안 서핑투어’ 숏보드 부문에서 5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균형감각과 유연함이 강점인 그가 국제대회 출전 경험을 쌓는다면 아시아경기 금메달도 기대할 만하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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