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칼럼]박근혜, 보수 분열의 아이콘 될 건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25일 03시 00분


朴, 돈 받아서 탄핵된 것 아냐… 권력 사유화, 국민 신임 배신 탓
탄핵 찬반이 ‘사상검증’ 잣대… 여권 ‘朴사면 총선 필승론’
朴, 현실정치 미련 버리고… 박근혜 넘어야 보수가 산다

박제균 논설주간
박제균 논설주간
이런 글을 쓰려니 서두부터 마음이 복잡해진다. ‘박근혜의 절대고독.’ 2016년 1월 22일자 동아일보에 내가 쓴 칼럼의 제목이다.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기 한참 전이었지만, 당시 박 대통령이 청와대에 칩거하며 외부와의 소통을 비정상적으로 차단했음을 우려하는 내용이었다.

칼럼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맺었다. “대통령이 정책 결정 과정에서 균형감을 잃지 않았는지, 수시로 전문의 상담을 받는 미국의 예를 참고할 필요도 있을 것 같다.” 바로 이 문장 때문이었다. 청와대 관계자의 항의를 받은 것은. “대통령이 정신과 상담이라도 받으라는 것이냐?”

명색이 기자로서 칼럼을 쓸 당시에도 이미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과 은밀한 커넥션을 맺고 국정 개입을 방치했다는 점을 몰랐다는 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박 전 대통령은 본인 주장대로 ‘임기 중에 자나 깨나 나라 걱정’을 하며 지냈을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그 노심초사는 국정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어쩌면 박근혜의 가장 큰 잘못은 대통령이란 직(職)을 수행하기에 부적합한 성격이었는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박 전 대통령 탄핵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그 이유로 “박근혜 호주머니로 한 푼이라도 들어간 게 입증됐느냐”는 논리를 댄다. 법무부 장관 출신으로 탄핵 당시 대통령권한대행을 지낸 황교안 전 국무총리도 이틀 앞으로 다가온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의 대표 경선과정에서 비슷한 얘기를 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돈 받아서 탄핵당한 것이 아니다. 국민이 위임한 헌법상 대통령의 권력을 사유화해 최순실이란 사인(私人)에게 넘겨 국민의 신임을 배신했기 때문에 파면당한 것이다. 탄핵을 결정한 헌법재판소도 이 점을 중시하며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의 국정 개입 사실을 철저히 은폐해 헌법 수호 의지가 없다고 판시했다. 이는 국가의 명운이 걸린 대통령의 책무를 사실상 팽개친 것이어서 돈을 받은 것보다 더 나쁘다고 나는 본다.

그런데 헌법과 법률상 명명백백한 박근혜의 탄핵 사유로 한국당 전대가 늪처럼 질척거리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벌써 탄핵이 2년이 다 돼 가지만 탄핵에 찬성하느냐, 마느냐가 무슨 사상검증의 잣대처럼 여겨지고 있다. 시대착오도 이런 시대착오가 따로 없다.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 실정(失政)에 숨이 막히는 보수 유권자가 한국당에 관심을 가지려다가도 눈길을 돌리는 이유다.

박근혜 본인은 원치 않았을지 몰라도 이미 그 자신이 한국당 분열의 아이콘처럼 돼버렸다. 이런 한국당의 약점을 잘 아는 여권에서 ‘박근혜 사면 총선 필승론’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박 전 대통령을 사면하면 보수 세력이 둘로 쪼개져 선거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이란 얘기다. 과거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 반대로 돌아가는 형국이다.

박 전 대통령은 때가 되면 사면돼야 한다고 본다. 전직 대통령 두 명에 대법원장 출신까지 감옥에 있는 나라가 지구상에 비교적 멀쩡한 국가 가운데 또 있을까. 국격(國格)과 국민통합을 위해서도 사면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사면이 또 다른 분열의 불씨가 돼서는 안 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박 전 대통령이 자제해야 한다. ‘감옥의 박심(朴心)’이나 흘려 현실정치에 개입하려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박 전 대통령이 실패한 까닭은 부모의 비극적 최후에 따른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해 국정을 수행할 심리적 준비가 안 돼 있던 탓이 크다. 그런데 이번에는 본인이 보수 정치의 트라우마로 남으려는 것인가. 박 전 대통령도 보수 세력을 둘로 쪼개 스스로 정권교체의 걸림돌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27일 누가 한국당 대표가 되든,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박근혜를 넘어야 한국당이 산다. 지나간 물은 역사의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고, 돌려서도 안 된다. 박 전 대통령도 현실정치에 미련을 버리고 한국 보수의 미래를 위해 기도하는 심정으로 지켜보는 것이 전직 대통령으로서 얼마 남지 않은 품위를 지키는 길이다. 보수가 살아야 박근혜 대통령의 시대도 재평가 받을 마지막 기회라도 잡을 것이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탄핵#박근혜#자유한국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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