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하얀 가운을 입고 건강검진 결과를 유창하게 설명하는 이모 씨(33)를 ‘의사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서울지역 A병원과 B병원 이름이 적힌 이 씨의 명함 두 개는 모두 가짜였다. 의사 면허가 없는 그에게 ‘의사’ 역할을 맡긴 곳은 하모 씨(45)가 운영하는 불법 출장검진 기관이었다.
이 불법 출장검진 기관은 2008년부터 2014년까지 A, B병원 명의를 빌려 관공서나 기업에서 출장검진을 실시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비용을 청구하는 수법으로 총 17억 원을 챙겼다. 출장검진 때 채혈 직전 환자들에게 15만 원가량의 ‘혈액종합검사’도 끼워 팔았다. 혈액형이 틀리거나 남성 혈액으로 난소암 검사를 하는 등 검사는 엉터리였다.
일반인이 돈벌이를 위해 의료인 명의를 빌려 운영하는 이른바 ‘사무장병원’이 활개치고 있다. 불법 의료기관에서 환수해야 할 금액은 2005년 5억5000만 원에서 지난해 6489억9000만 원으로 1180배로 늘었다. 지난해 직장 가입자 월평균 건보료가 10만6243원인 점을 감안하면 약 51만 명의 1년 치 건보료가 불법 의료기관으로 흘러간 셈이 된다. 건보 재정을 축내는 주범인 사무장병원은 국민 건강에도 치명적인 위협이다. 감기 환자에게 권장되지 않는 항생제 처방 비율은 사무장병원이 43.9%로 일반 병원(37.8%)보다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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