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어제 한 포럼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부터 기존의 핵·경제 병진노선을 버리고 경제 건설에 총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장관의 발언은 김정은이 핵을 포기했다는 것인데, 김정은의 최근 행보와 거리가 멀다. 김정은은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핵·경제) 병진의 위대한 대업 성취” “(미국의) 핵위협을 핵으로 종식” 운운하며 핵무장 능력을 과시했다. 연설문 어디에도 ‘비핵화’ ‘핵 포기’란 단어는 찾아볼 수 없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우려됐던 김 장관의 북한 편향성이 그대로 드러났다.
김정은은 16일 평양 방어 임무의 공군부대를 방문한 데 이어 17일 신형 전술유도 무기사격 시험을 참관했다. 지난해와 달리 이번엔 실제 발사가 이뤄져 도발 수위가 높아진 것이다. 2·28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미국과의 대화 판을 깨지 않을 정도의 도발로 긴장을 고조시켜 나가겠다는 전략의 일환으로 보인다. 북한의 이런 ‘무력시위’는 미국이나 한국에서 앞으로 만족할 만한 응답이 없을 경우 언제든지 더 큰 도발을 벌이겠다는 협박이다.
그래도 우리 정부는 애써 눈을 감고 있다. 김 장관은 비핵화 언급 없이 “경제를 고리로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평화에 기반해 다시 경제적 협력을 증진시키는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을 이뤄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먼저 남북 경제협력을 통해 평화 프로세스를 진전시켜 나가자는 논리다.
하지만 북한이 무력시위로 긴장을 고조시키는 상황에서 선(先)경협 노선은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는 북한을 향해 ‘선(先) 비핵화, 후(後) 대북제재 해제’ 원칙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대표적인 남북 경협 방안으로 거론되는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재개 요구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제동을 걸었다. 남북 경협에 목소리를 높이는 김 장관이 대북제재 국제공조를 무력화하려는 총대를 멘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이 무력시위에 나서고 있는 ‘포스트 하노이’ 전략을 직시해야 한다. 미국에는 다시 대화에 나설 것을 요구하면서 한국에 대해선 북한 편을 들라는 메시지다. 지금 남북미 3각 대화의 핵심은 비핵화다. 비핵화를 위해서는 미국 등 국제사회와의 대북제재 공조를 더 강화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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