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질 몸짱의 상체는 ‘역삼각형(▽)’이다. 어깨는 보기 좋게 벌어졌고, 허리는 잘록하다. 우리는 그 역삼각형 체형과 탄탄한 근육을 보고 “아름답다”고 감탄해 왔다. 그런데 요즘엔 잘록한 허리 보기가 예전만큼 쉽지 않다. 몸짱들의 배가 갈수록 불룩해진다. 배는 분명 근육질로 돼 있는데, 비대해 보이는 게 영 아름답지 않다.
복근 운동이 지나쳤던 탓일까. 아니다. ‘약물’의 부작용이다. 암시장에서 많이 거래된다는 성장 호르몬이 주범이다. 성장 호르몬이 배 속 내장 근육까지 키워서 부풀어 오른다고 한다. 약물 전문가에게 문의했더니 “내장 근육이 커졌을 수도 있고, 대사 작용이 왜곡돼 내장 비만이 생겼을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배뿐만 아니다. 여성형 유방(여유증)을 가진 몸짱도 적지 않다. 이건 애너볼릭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이다. 애너볼릭 스테로이드는 황소의 고환에서 추출한 남성 호르몬이다. 역시 단기간에 근육을 키워준다. 그런데 이 호르몬이 몸속에서 분해될 때 여성 호르몬이 생성되면서 가슴이 커진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몸매가 아니다. ‘건강’이 망가지고, 죽는다. 스테로이드 등을 복용하면 불임, 피부 괴사, 뇌 손상, 간 질환 등 심각한 후유증이 생긴다. 젊은 사람이 심장마비로 사망하기도 한다. 심장 근육이 커지면서 심장의 수축과 이완 리듬이 왜곡되기도 하고, 혈관에 지방이 쌓이면서 좁아지기 때문이다. 몸짱 대회 참가자가 계체(체중 측정)까지 해놓고 대회장에는 나타나지 않을 때, 관계자들은 심장마비를 의심한다.
전문 보디빌더만의 문제가 아니다. 약물을 쓰는 사람들 상당수가 일반인이고, 그 수가 계속 늘고 있어 심각하다. 암시장에서 불법으로 약물을 판매하는 세력들이 소셜미디어나 헬스클럽을 통해 몸짱이 되고 싶은 젊은이들을 무차별 공략하고 있다.
스테로이드 등은 전문 의약품이다. 의사의 처방이 있으면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의사 처방을 받고 근육 키우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의사가 치료 목적 아니면 처방전을 써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법으로 거래하고, 그래서 더 위험하다. 어느 정도의 양을, 얼마의 기간 동안 써야 하는지도 모르고 막 쓴다.
암시장에서는 ‘디자이너’라고 불리는 사이비 약물 전문가들이 약을 처방해준다. 이들은 근육을 키우기 위해 허용치의 10배까지도 처방한다. 한두 명에게 투약해보고, 문제없으면 계속한다. 불법 생체 실험이다. 그러다 부작용이 생기면 간 치료제, 여유증 치료제 등을 불법 구매해 또 판매한다. 이용자는 그 꼴을 보고도 약을 못 끊는다. 약물에 중독성이 있고, 약을 끊을 경우 한두 달이면 근육이 쪼그라들기 때문에 그 왜소한 모습을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계속한다. 마약 같다.
대대적인 단속을 하고 있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측도 “마약 못지않게 위험하다”고 한다. 마약은 단속법이 있어 판매자도 구매자도 다 처벌을 받는다. 그런데 이런 약물에 대해서는 약사법에 따라 판매자만 처벌한다. 그래서 구매자가 쉽게 빠져들 수 있다.
일본은 지난해 말 도핑방지법을 도입해 운동선수들이 금지약물을 쓸 경우 형사 처벌을 받게 했다. 유럽 등은 앞서 시행했다. 그만큼 약물에 대해 엄격해지고 있다. 우리는 그만큼도 나아가지 못했다. 선수가 금지약물을 쓰더라도, 자격 정지 등 스포츠계 자체 징계만 할 수 있다. 일반인에 대해서는 논할 단계도 아니다.
약물 전문가들은 “지금은 선수보다 일반인 금지약물 문제가 더 심각하다. 국민 건강이 위험하다”고 한다. 식약처는 구매자 처벌 등에 대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판매자 단속과 구매자 계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국민 건강에 관련된 문제라면 조금 더 적극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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