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애니메이션 한국인 첫 총감독 ‘스튜디오 미르’ 류기현 감독
시나리오 뺀 全과정 제작 큰 의미… 한국적 감성 녹여낸 콘텐츠로 승부
척박한 한국의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그나마 대부분 외국 스튜디오의 하청 프로젝트였지만 재미있겠다 싶은 일은 앞뒤 안 가리고 찾아다닌 지 10년째였다. 2007년 미국 소니 스튜디오의 초청으로 미국 땅을 밟은 지 10여 년 만에 류기현 감독(46)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프로젝트의 총감독(executive producer) 타이틀을 달고 지난해 9월 돌아왔다.
한국에서 10년간 기본기를 닦았다면 애니메이션의 본고장 미국에서는 같은 기간에 선진 시스템을 경험했다. 미국의 소니와 니켈로디언, 드림웍스 등 쟁쟁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거치며 ‘코라의 전설’과 ‘볼트론: 전설의 수호자’같이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은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서울 금천구 ‘스튜디오 미르’ 사무실에서 16일 만난 류 감독은 후배들과 함께 올해 7월 공개될 예정인 넷플릭스 프로젝트에 몰두하고 있었다. 류 감독은 “시나리오를 제외한 모든 작업을 한국에서 소화한다는 건 정말 의미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애니메이션 업체들은 그동안 미국에서 기획한 작품의 제작을 일부 대행하는 역할을 했는데 스토리를 제외한 전 제작 과정을 한국에 일임하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의 천국 미국에서 그가 가장 놀랐던 점은 거대 자본과 열정적인 팬덤이 만들어 내는 선순환 구조였다. 애니메이터들도 적극적으로 콘텐츠를 성공시켜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동료, 팬들과 활발하게 소통했다.
“미국에서는 작업 과정이나 작품의 디테일에 대해 팬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했어요. 그게 그대로 스핀 오프 등으로 이어지고 콘텐츠의 수명이 끊임없이 늘어났죠. 마블이 대표적인 예에요. 아티스트에게 가장 절망스러운 건 콘텐츠의 생명을 지속시키지 못하고 좋은 캐릭터와 스토리들이 사장되는 겁니다.”
류 감독의 꿈은 스토리부터 제작까지 100% 국내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이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것이다.
“한국의 섬세한 감성을 미국식 문화와 잘 섞어 미국 현지에서도 주목받는 콘텐츠를 제작해 보고 싶습니다. 후배들이 성장하고 있으니 덤벼 볼 여지가 있습니다.”
넷플릭스를 시작으로 애플과 디즈니도 스트리밍 시장에 뛰어드는 등 스트리밍 산업의 빅뱅으로 순수 국내 콘텐츠가 해외로 도약할 수 있는 여지도 넓어졌다. 이를 위해서는 실수도 하고 실패를 맛보면서도 끊임없이 ‘덤비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많은 자본을 투입해 유명 만화 ‘아키라’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다가 상업적으로는 실패했지만 그 경험은 높은 수준의 제작 방식을 학습한 ‘아키라 세대’를 낳았습니다. 실패의 경험이 반복돼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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