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논리 빠져 정책수정 못 하는 靑, 무역갈등-경쟁격화 세계경제는 악화
그사이 중국은 정치권이 혁신 주도… 시장개입 과도한 우리 정부, 바뀌어야
퇴근길 막히는 도로에서 앞차 뒤창에 붙여놓은 ‘나도 내가 무서워요’라는 초보운전 스티커를 보고 빵 터졌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이 한마디가 운전 초보일 때 생각을 불러일으키며 집으로 오는 내내 남을 배려하는 운전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북송시대의 선승인 종고 대사가 한 말이라는 ‘촌철살인’은 사람의 마음속을 점령하고 있는 속된 생각을 완전히 쫓아 없앤다는 의미다.
한국 생활 36년째라는 한 영국인 기자는 그가 쓴 ‘한국, 한국인’이라는 책에서 ‘세월호의 비극’을 바라보며 한국인은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지나치게 자책한다’고 썼다. 비슷한 분석을 한국 경제에 적용해도 과하지 않아 보인다. 경제정책조차도 진영의 정치논리에 빠져서 자신들의 생각이 옳다며 정책을 바꾸는 데 매우 인색한 청와대와 여당 그리고 야당도 한국인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한국 경제를 둘러싼 글로벌 환경이 녹록하지 않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과 중국의 통상 분쟁, 지지부진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와 유럽의 극심한 경제사회적 혼란, 세계 곳곳에서 극성을 부리는 포퓰리즘 풍조 등 악화일로의 불안정한 정치 및 경제 상황, 어느 하나도 한국 경제에 만만한 것이 없다. 올해 초 국제통화기금(IMF)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가 “세계 경제는 금년 들어 모멘텀을 크게 잃어가고 있고 위태로운 상황에 들어섰다”고 할 때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였다. 최근에도 가까운 시일에 경기 침체 수준까지 가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 경제는 계속 약화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변화하는 글로벌 환경에 맞춰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 경제는 칼끝에서 춤춰야 하는 상황인데, 미시적인 정책에 매달려 미래를 내다보는 정책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조만간 미중 무역전쟁은 일단 타결은 되겠지만 이는 글로벌 패권을 다투는 분쟁의 새로운 시작일 뿐이다. 제조업 활성화를 목표로 발표한 ‘중국제조 2025’ 등 중국의 산업보조금 제도가 중국 기업과 겨루는 외국 기업들이 토로하는 주요 불만이자 기술패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 요소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 미국보다 더 경계해야 할 나라는 한국이다. 독일 싱크탱크 메르카토르중국연구소(MERICS)는 중국제조 2025의 목표가 한국이 경쟁 우위를 가지고 있는 반도체, 조선, 기계장비, 로보틱스, 바이오산업 등과 겹쳐 한국이 최대 피해자라고 분석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난 10여 년간 녹색성장, 창조경제, 혁신성장 등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름만 바꿔 달면서 오락가락해 왔다. 당연히 혁신이 이뤄지지 않았고 기술력은 제자리걸음을 해왔으며 생산비용만 늘어 경쟁력은 떨어졌다. 대통령 직속기구로 과학기술 분야의 최상위 컨트롤타워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이 오죽하면 지난해 정부가 과학기술 전문가 집단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 주요 과학기술정책에 대해 자문을 해온 적이 없었다고 걱정을 했을까 싶다.
중국의 성공 비결은 개혁개방에 지도자들이 명확하고 일관된 비전을 제시하고, 수립한 정책을 적극적이면서 지속적으로 추진한 데 있다. 반면, 우리 경제는 근간이 되는 중요한 정책들이 5년이라는 시한부 정책이 되어 버렸다. 그뿐이 아니다. 정권을 가리지 않고 이상론에 치우쳐 정부가 무분별하게 시장 개입과 규제를 남발해 기업의 투자 의욕을 꺾고 자율경영을 해치는 상황이 됐다. 미래 산업에 투자할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고 의욕을 잃은 기업에서 좋은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새로운 산업과 기술, 인력에 기업이 과감한 투자를 하도록 기업가 정신을 최대한 이끌어내야 하는데 말이다.
이제는 심각하게 경제학자 해럴드 뎀세츠가 지적한 ‘니르바나 오류(Nirvana Fallacy)’처럼 현실세계에서 당도하기 어려운 열반의 경지의 기준이나 규범을 만들어 놓고 정부가 시장에 개입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다. 소위 적폐라는 그동안의 그릇된 관행을 바로잡아 건전하고 공정한 국가로 성장해 나가는 것이 백번 맞지만 광복 후 74년이란 세월 동안 고난을 이겨가며 만들어낸 성과를 과도하게 자책하는 것도 옳지 않다. 영국인 기자가 한국에 전하는 촌철살인 충고는 한 국가의 번영은 이상과 명분이 아니라 모든 시장 참여자들의 자발적 에너지가 응축돼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