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는 힘이 있다. 건설업에서는 더욱 그렇다. 여러 사람이 함께 사는 아파트가 보편적인 국내 주거 문화에서 건설사의 브랜드이미지(BI) 하나가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할 수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2000년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도입한 ‘래미안’ 브랜드다. 삼성물산은 ‘OO아파트’라는 이름이 일반적인 당시 풍토에서, 프랑스어로 ‘내 것’ 또는 ‘나와 가까운 사람’이라는 뜻과 ‘미래지향적(來)이고 아름답고(美) 안전함(安)을 추구한다’는 의미를 동시에 지닌 새로운 래미안 BI를 제시했다. 그 결과 국내 주택시장의 ‘판도’를 일거에 뒤집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국내에서는 여러 종류의 아파트 브랜드들이 등장했다. 그때 나온 1세대 브랜드들이 이제 20여 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부침을 겪고 있다. 건설사들은 브랜드가 가진 힘을 잘 알고 있기에, 다른 어떤 경영 판단을 내릴 때보다 BI 교체에 신중하다. 최근 건설업계에서 불고 있는 BI 교체 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을 고수하는 기업의 사례를 정리해 봤다.
익숙한 듯 새롭게… 속속 바뀌는 아파트 BI
최근 BI를 바꾼 대표적인 기업이 대우건설이다. 대우건설은 ‘푸르지오’ 이름을 유지한 채 완전히 브랜드를 리뉴얼했다. 새로 나온 대우건설 BI 모습은 ‘산들바람에 부드럽게 흔들리는 바람’을 형상화했다. 20년 동안 초록색이었던 푸르지오의 상징 색깔도 검은색이 살짝 섞인 ‘브리티시 그린’으로 바뀌었다. 대우건설의 표현으로는 ‘초록색에 검은색 잉크 한 방울이 떨어진’ 색상이다. 백정완 대우건설 주택본부장은 “푸르지오를 주거공간을 넘어선 고객의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브랜드로 키울 것”이라며 BI 변경 각오를 밝혔다.
현대건설은 자사의 ‘힐스테이트’ 브랜드를 소폭 변경했다. 익숙한 모습을 유지한 채 새로움을 찾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전략이다. 기존 BI에 표시된 힐스테이트의 영문 표시를 없애고 한글 로고만 표기하도록 통일했다. 힐스테이트 글자를 예전보다 키우고 와인 컬러로 색상도 통일했다. 현대건설 측은 “주택시장 1위 브랜드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 리뉴얼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호반건설 역시 최근 대대적인 브랜드 변경에 나선 기업이다. 호반건설은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아 기업이미지(CI)와 BI를 동시에 바꿨다. 또 ‘호반써밋’이라는 이름의 프리미엄 아파트 BI를 내놨다. 호반건설은 5, 6월 호반써밋 BI를 사용하는 아파트 단지를 여러 곳에서 분양할 예정이다.
경쟁력 높은 기존 브랜드 고수
GS건설의 ‘자이’는 BI 교체 필요성이 높지 않은 브랜드 가운데 하나다. GS건설 자이는 브랜드 평가회사인 브랜드스탁에서 진행한 ‘2019 대한민국 브랜드스타’에서 아파트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자이가 이전에도 부동산114, 닥터아파트 등의 아파트 브랜드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던 점을 감안하면 ‘3관왕’을 차지한 셈이다.
자이의 인기는 청약 경쟁률로도 입증된다. 지난해 서울에서 분양한 아파트 가운데 청약통장이 가장 많이 몰린 1∼3위가 모두 자이 브랜드 아파트다. 디에이치 자이(3만1423건)가 1위였고 이어 고덕 자이(1만5395건), 마포 프레스티지 자이(1만4995건)의 순이다. GS건설 측은 “앞으로도 자이가 대한민국 주택시장을 선도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화건설 ‘꿈에그린’ 역시 기존 전통을 고수하는 브랜드 중 하나다. 꿈에그린은 2001년 9월 론칭 이후 지금까지 150개 사업장의 아파트 7만 채에 적용됐다. 한화건설 측은 “고급스러움과 편안함을 동시에 갖춘 아파트 브랜드가 됐다”고 자체 평가하고 있다. 꿈에그린은 특히 디자인 측면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꿈에그린은 세계 3대 디자인상으로 꼽히는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2010년부터 6년 연속 상을 받기도 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는 기존 브랜드를 유지한 채 새로 내놓는 주택을 대상으로 신규 브랜드를 내놓았다. 공사 창립 30주년을 맞아 SH공사와 서울시가 함께 발표한 ‘청신호(靑新戶)’가 그것이다. 청신호는 신혼부부나 청년들에게 특화된 평면이 적용되는 주택이다. 김세용 SH공사 사장은 “청신호 브랜드를 토대로 SH공사는 서울시가 시민들에게 약속한 공공주택 24만 호 공급의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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