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년만에 해군 감사패 받아
해군, 6·25전쟁 중 성금 모아 광화문보다 16년 앞서 진해에 세워
“우리 손으로 제작한 거대한 충무공 동상이 진해만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면서 전쟁을 끝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습니다.” 67년 전 우리나라 최초로 대형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을 만들었던 이진수 옹(95)은 24일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이 옹은 올해 충무공 탄신 제474주년(28일)을 맞아 충무공의 정신을 드높인 공로로 이날 해군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이 옹은 1951년 해군 조함창(현 정비창)의 주물 담당 군속(군무원)으로 근무하면서 대형 충무공 동상 제작에 참여했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1월 해군은 국난 극복의 염원을 담아 이순신 장군 동상을 세우기로 했다. 이후 시민을 중심으로 동상건립기성회가 결성됐고, 장병과 국민들의 성금도 모였다. 놋그릇을 기부한 사람들도 있었다.
높이 4.82m, 너비 1.40m의 충무공 동상은 1951년 11월 제작에 착수해 이듬해 4월 경남 창원시 진해구 북원로터리에서 제막됐다. 당시로선 국내 최대 규모였고 서울 광화문 충무공 동상보다 16년이나 빨랐다. 국내 대형 충무공 동상 1호인 이 동상은 현재 창원시 근대건조물 제1호로 지정돼 있다.
이 옹은 “당시에 4m가 넘는 동상을 제작할 수 있는 주물 기술을 보유한 곳은 해군 조함창이 유일했다”며 “나를 포함해 10여 명의 동료들이 4개월 이상 거푸집을 만들고 쇳물을 부어 완성했다”고 말했다. 제막식 이후 충무공 동상 앞에서 매년 열린 추모제는 1963년부터 군항제로 바뀌어 대표적 문화 축제로 자리 잡았다.
1949년부터 20여 년간 해군 조함창에서 근무한 이 옹은 해군 정비 분야의 산증인으로 꼽힌다. 각종 표창과 상장도 20여 차례나 받았다. 이 옹의 둘째 아들인 치관 씨(58)도 25년째 해군 군수사 정비창에서 근무하고 있다. 치관 씨는 “아버지께서 해군과 정비창의 일원이었다는 것을 항상 자랑스럽게 말씀하셨고, 동상에 대한 애정도 자주 표현했다”며 “해군 정비 군무원 후배로 직무 수행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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