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임 ‘행복도시락 성남점’ 대표
남편의 건강 악화로 가장 역할, 성남자활센터에 취업해 일 배워
집에 두고 온 아이들 생각에 저소득층 대상 도시락 업체 창업
수익금 모아 장학사업도 진행
“기초생활수급자였던 제가 도움 주는 사람이 됐다는 게 영광이죠.”
23일 경기 성남시 분당의 한 아파트 상가. 주차장에 들어서자 ‘행복을 나누는 도시락’이라는 문구가 적힌 큰 배달차가 눈에 띄었다. 이 건물 지하에는 저소득층 학생과 노인, 장애인들에게 무료로 도시락을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 ‘행복도시락’ 성남점이 입점해 있다. 벌써 15년째 행복도시락 성남점을 운영해 온 강승임 대표를 만났다.
○ ‘자활센터’에서 운명적 만남
이날 검정 정장을 입고 기자를 맞은 강 대표는 “16년 전만 해도 평범한 주부였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초교 3학년과 1학년, 두 아이를 키우던 중 남편의 건강이 악화돼 가정에 수입이 끊겼다. 그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그러나 국가에서 지원받는 돈만 가지고는 두 아이를 키워낼 자신이 없었다. 강 대표가 제 발로 ‘성남만남지역자활센터’를 방문해 일자리를 찾아보게 된 이유다.
‘주부 9단’으로 살아왔던 강 대표는 자활센터 내 급식사업단에 취업하게 됐다. 낮에는 일을 하고 퇴근 후에는 요리학원에 다니며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땄다. 성실히 일하다 보니 직장에선 팀장급으로 승진했다. 결국 2006년 사회적 기업 ‘행복도시락’이 막 시작될 무렵 동료 10명과 독립해 ‘행복도시락 성남점’을 창업했다.
그가 ‘도시락 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집에 두고 나온 아이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많은 저소득층 아이들은 한창 성장기에 꼭 필요한 영양소를 섭취하지 못한 채 지내는 경우가 많다. 이들에겐 타인의 손길이 절실하다. 그가 처음 급식업을 배운 자활센터에는 강 씨처럼 형편이 어려워 아이를 집에 두고 일터로 나올 수밖에 없는 엄마들이 많았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담아 맛있고 영양 넘치는 도시락을 만들어 배달하는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창업 초창기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분당 목련마을의 허름한 아파트 상가 지하를 내주어 사무소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사업을 시작한 강 대표는 2009년엔 기초생활수급자에서 벗어났고, 저소득층을 위한 도시락배달 사업을 계속 이어간 덕분에 2011년 10월엔 보건복지부의 ‘자활명장’으로 선정됐다.
○ 어려웠지만 이젠 누군가를 돕는다는 기쁨
지금까지의 과정이 평탄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적 기업도 수익도 내야 지속 가능하다. ‘행복도시락’은 저소득층에게 무료로 배달하기 때문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금을 받는다. 하지만 지원금만으로는 사업을 유지하기 어렵다. 일반 소비자에게도 일정량을 판매해야 했다. 하지만 쟁쟁한 브랜드 도시락 업체가 많은 상황에서 일반 고객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강 대표는 “처음엔 전단을 무조건 돌려보다가 영업 마케팅 전문가로부터 교육을 받았다”며 “대규모 행사나 시설에 도시락 납품 계약을 따내는 노하우를 꼼꼼하게 배우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카드뉴스 제작이나 고객 리스트 관리 같은 마케팅 이론도 익혔다. 주부로 살 때는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것들을 일일이 부딪혀 가며 배웠다. 그 결과 이제는 예비군훈련장 점심도시락이나 각종 기업행사의 음식출장서비스를 맡을 정도로 성장했다.
그는 “행복도시락을 사 드시는 분들은 저소득층 아동과 노인들을 위한 도시락 사업에 큰 도움을 주는 셈”이라며 “그런 따뜻한 마음을 헤아려 더 정직하고 올바르게 음식을 만들려고 한다”고 전했다.
이제는 운영 15년 차에 이르는 ‘행복도시락’을 통해 어떤 행복을 얻었냐고 묻자 그는 “장학금 사업을 한 것이 가장 보람 있다”고 답했다. 강 대표는 자활사업단을 통해 본인처럼 사회적 기업을 창업한 관내 7, 8개 업체들과 힘을 합해 수익금의 일부를 모아 매년 장학사업을 진행해왔다. 연간 총 1000만∼1500만 원 정도를 지역의 어려운 학생들에게 지급한다. ‘우리도 어려웠지만, 작은 수익금이나마 모아서 도움이 순환되는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다. 중고교 학생에겐 50만 원이 지급되고 대학생에겐 150만 원이 지급된다. 강 대표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자활센터를 찾았던 건 ‘신의 한수’였다”라며 “나라에서 주는 지원금에만 의지한 채 살지 않고 꼭 다시 일어서는 엄마의 모습을 두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몇 년 전 한 고등학생이 쓴 글을 소개했다. ‘행복도시락’을 주제로 한 글쓰기 대회 수상작의 일부분이었다.
‘무거운 프라이팬을 들고 뜨거운 불 아래서 일하던 엄마는 아파서 수술을 하셨습니다. 배달 온 도시락을 먹는데 병원에 계신 엄마가 떠올라 눈물이 났습니다. 누나도 평소 힘든 게 터졌는지 부둥켜안고 꺼이꺼이 울면서 돈가스를 먹었습니다. (…) 제가 받은 도움을 잊지 않고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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