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부터 대전역서 서명운동 돌입… 13개 대학과 연계해 45만명 돌파
“100만명 목표 이룰 때까지 계속”
찬바람이 불던 2월 2일 오후 대전 동구의 중앙시장. 30대 중반의 주부가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의 ‘원자력 살리기 서명운동’에 참여하려다 순간 주춤했다. 7세 안팎의 아이가 “저거 원자력발전소 짓는 거잖아”라며 마뜩잖은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이 학과 윤종일 교수가 얼른 아이에게 원자력이 안전하고 친환경 에너지라는 점을 설명했다. 이를 본 어머니는 서명을 마치고 자리를 떠났다.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펴면서 탈핵단체들이 원자력과 방사능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여과 없이 담아 책자를 만들어 배포하고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해 국민 여론을 호도합니다. 여기에 일부 시도교육청도 동참하다 보니 적지 않은 아이들이 왜곡된 생각을 갖게 됐어요.” 최성민 학과장은 “그동안 터무니없다고 치부해 이런 잘못된 지식의 확산을 방치한 책임이 우리에게도 있다는 것을 현장에 나와 절실하게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 학과 학부생과 대학원생, 교수들은 이날부터 토, 일요일 빠짐없이 대전역을 찾고 있다. ‘40년 무사고의 원자력’, ‘온실가스, 미세먼지 없는 원자력’, ‘영화 보고 탈원전, 논문 읽고 친원전’, ‘북극곰이 원자력을 응원합니다’ 등 원자력의 안전성과 친환경성을 알리는 전단을 배포하며 서명을 독려한다. ‘오케이 아톰’을 클릭해 온라인 서명에 참여하도록 호소하기도 한다. 지난달 초 기자가 대전역의 서명 현장을 취재할 때였다. 학생과 교수들은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철회하라”, “국민세금 7000억 원을 들인 신한울 3, 4호기 원전 건설을 재개하라”고 촉구했다. 서명한 뒤 “파이팅”하면서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거나 음료수를 건네며 격려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최 학과장은 “현장에서 만난 생면부지의 시민들이 서명을 한 뒤 개인적으로 50명, 100명씩 서명을 받아다 주기도 한다”며 “이런 분들의 성원으로 KAIST 서명운동에 1만1000여 명이 지지해주셨다”고 전했다. KAIST와 더불어 서울대, 부산대 등 13개 대학의 원자력공학과가 녹색 원자력 학생연대를 결성해 전국적으로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는데 최근 45만 명을 돌파했다. 하지만 호의적이지 않은 반응도 있다 한 40대 여성은 “원자력 위험한 건 어쩔 거야”라고 쏘아붙이고 지나갔다. 박사과정 2년 차인 손성민 씨(26)는 “어이없게도 ‘KAIST에 원자력학과가 없는 걸로 아는데 혹시 학교를 사칭해 여론을 호도하려는 것 아니냐’고 다짜고짜 따져 묻는 사람들도 있다. 탈핵단체 관계자들이 서명운동을 위축시키려고 그러는 것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정부의 탈원전 기조의 여파는 산업계와 교육계로 확산되고 있다. 이 학과 장창희 교수는 “한국은 원자력의 설계, 제작, 운전, 정비에 이르는 완벽한 체인 기술을 갖췄고 이를 토대로 미국의 인증을 받았는데 이는 원자력 강국인 프랑스와 일본도 도전했으나 이뤄내지 못한 일”이라며 “하지만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우리 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아 세계시장에서 우위를 내줘야 할 판”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원자력 분야 세계 톱3를 자임하는 KAIST의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는 학부생 모집에 비상이 걸렸다. 2016년 22명이 지원했으나 지난해 5명, 올해는 4명으로 줄었다. 이에 따라 지난해부터 학과 사상 처음으로 봄 학기 학과설명회와 복수 및 부전공 학과설명회를 열었다. 학과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1학년 과목인 ‘원자력 및 양자의 세계’를 팀 프로젝트와 견학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면 재편했다. 최 학과장은 “대학원마저 인재 확보가 어려워진다면 세계 최고 수준의 원자력 인력 기반이 무너질 것”이라며 “이제라도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재고하도록 전국 원자력공학 학과들과 함께 100만 명 목표를 이룰 때까지 서명운동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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