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세포를 이용해 뇌세포 수백만 개로 구성된 미니 뇌를 만들었다. 이 뇌가 빛 등 자극에 반응하거나, ‘의식’을 갖게 된다면 어떨까. 치료 목적으로 환자로부터 뇌 전체나 일부 조직을 몸 밖으로 떼어낸다면 이 뇌 조직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을까. 뇌를 다른 동물에게 이식해 자라게 하면 이 존재는 사람일까 동물일까.”
지난해 4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미국의 생명과학자와 법학자 17명이 발표한 입장문 내용의 일부다. 당시 학자들은 “인간의 뇌 복제가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답하기 어려운 문제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며 앞으로 마주할 상황을 제시했다. 이 가운데는 “만약 손상된 뇌 기능을 회복시킬 수 있다면 1960년대 이후 사실상 죽음의 기준이 된 ‘뇌의 죽음’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란 질문도 있다. 죽음의 정의 자체가 변할 수 있다는 물음이다.
당시만 해도 가정이지만 이 질문은 현실이 됐다. 이달 18일 미국 예일대 의대 연구팀은 죽은 지 4시간이 된 돼지 32마리에서 뇌를 분리한 뒤 특수 용액을 순환시켜 6시간 동안 뇌 조직을 살아있게 하는 데 성공했다고 소개했다.
뇌는 정상 형체를 유지했고 뇌 면역세포가 기능을 했으며, 뇌세포와 뇌세포를 잇는 접합부인 시냅스에서 신경신호도 발생했다. 하지만 연구팀은 “뇌세포 일부가 활성화됐을 뿐 뇌 자체의 기능이 되살아난 것은 아니고 의식 같은 고차원적인 뇌 활동은 없었다”며 과도한 의미 부여를 경계했다.
뇌의 연구가 늘어나면서 윤리적 판단이 필요한 사례도 점차 늘고 있다. 이달 25일 미국 연구팀이 뇌 안에 측정 장비를 심어 발성과 관련된 신경신호를 읽은 뒤 말(음성)을 합성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언어장애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있지만 타인의 마음을 몰래 읽어내는 ‘독심술’ 기술로 악용될 소지도 있다는 게 일부 과학자들의 우려다.
당장 이번 돼지 실험도 윤리적 쟁점을 남겼다. 뇌 세포의 ‘부활’이 뇌의 부활로 이어져 죽음의 경계가 흐려질 가능성, 이로 인한 죽음 판정 기준의 변경으로 장기 기증과 이식이 위축될 우려 등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한 주제를 제기했다. 네이처는 18일 연구 결과와 동시에 뇌 윤리학자들의 논평을 게재하고, 22일에도 질의응답 형식으로 논란을 조명하며 이 분야 논의를 이끌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미국은 2002년부터, 한국은 2017년부터 뇌신경윤리연구회가 꾸려져 주요 문제를 하나하나 논의하고 있다. 류영준 강원대 의대 교수는 “기존의 윤리 프레임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뇌 오가노이드(미니 인공장기), 뇌 영상을 통한 마음읽기, 사지마비 환자를 걷게 하는 기술, 머리 이식 등의 중요한 윤리적 쟁점을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신경윤리학자들은 뇌 분야 쟁점들이 서로 긴밀히 연관된 만큼 긴 안목에서 폭넓게 다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류 교수는 “몸을 원하게 된 인공지능(AI)의 등장이나 인공 자궁을 통한 출산, 인간 복제, 기억 저장, 신체 대체 등은 모두 복잡하게 서로 얽혀 있다”며 “이를 고려해 기술 발달에 따른 윤리적 논의가 함께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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