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촘스키, 문명을 파괴하는 자본주의의 속성을 말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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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은 지금의 자본주의를 견뎌낼 수 있을까/놈 촘스키 지음·강주헌 옮김/296쪽·1만5000원·열린책들

이 책에는 몇 가지 한계가 있다. 이 저자에 대한 지식이 있는 독자라면 그의 이름과 책의 제목만 보고도 충분히 논지를 예상할 수 있다. 강연록과 여러 매체에 기고한 에세이 등 7개의 글이 역시간 순으로 나열돼 통일된 체계로 묶여 있지 않으며, 각각은 1969년에서 2013년에 이르는 긴 발표시간에 걸친다. ‘자본주의와 문명 파괴’라는 핵심적 논점은 앞의 두 장으로 국한된다.

그러나 이 한계들은 장점도 된다. 언어학자이면서 정치평론가인 이 사상가가 긴 인생 여정에 걸쳐 풀어놓은 정치적 사색의 재료들을 일별할 수 있다. 현존하는 세계의 거의 모든 악(惡)을 자본주의와 미국에 쏟아놓는 그의 특징을 사전에 아는 한, 그의 분석은 투명하며 비교적 견고하게 읽힌다.

오늘날 세계의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저자는 ‘RECD(really existing capitalist democracy)’로 칭한다. 약자를 한 단어로 그대로 읽으면 ‘난파하다, 부서지다’라는 뜻을 가진 ‘wrecked’와 발음이 같다. 미국 초대형 은행들이 수익을 못 내면 국가가 도와준다. 은행 주주들을 위해 보통 국민인 납세자들이 희생해야 하는 것이다.

은행을 살려주는 것까지야 참을 수 있지만, 기업계의 로비는 학생들에게 기후 변화를 부인하는 학설을 ‘공평하게’ 가르칠 것까지 요구한다. 환경 재앙이 닥치면 긴급구제를 요청할 곳도 없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부는 다를까. 2009년 유엔 기후변화 회의를 좌초시킨 주인공은 당시 대통령인 오바마였다고 저자는 고발한다. 예정된 재앙을 뻔히 보면서도 탐욕은 지구적 파국을 향해 달려온 것이다.

이 책 후반부의 세 개 장은 동구권 붕괴 이전에 쓴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친다. 문명을 파괴하는 것이 자본주의만의 속성일까. 현대문명 고유의 자기 파괴적 속성과 자본주의의 속성을 뒤섞어놓은 부분은 없을까. 옛 공산권의 비효율과 환경 파괴도 극심하지 않았던가. 물론 저명 사상가 촘스키는 붕괴 이전의 현실 공산주의도 서슴없이 경멸해왔다. 그러나 그가 자본주의의 결과로 판단하는 시대의 모든 병리가 적절한 범주화를 거쳤는지는 독자가 판단할 몫이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문명은 지금의 자본주의를 견뎌낼 수 있을까#촘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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