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지 1년을 맞지만 오늘 오후 한국 단독으로 진행하는 반쪽 기념행사는 1주년의 꿈과 현실을 보여준다. 두 정상은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나들고 도보다리 대화도 가졌지만 그때의 감격과 기대와 달리 북한 비핵화는 여전히 요원하고 남북, 북-미 관계는 꽉 막힌 상태다.
‘판문점 이후 1년’이 길을 잃은 가장 큰 원인은 김정은이 비핵화를 향한 진정성 있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1년 전 공동 언론 발표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는 것이 공동 목표”라고 약속했지만 비핵화 실천은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쇼 수준에서 멈췄고 하노이 회담에서는 비핵화의 개념, 목표를 공유하는 것조차 거부했다.
한반도에 평화의 새 시대가 열릴 것이란 기대와 달리 북-미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졌고 남북관계도 ‘남측의 일방적 구애와 북의 고압적 외면’이라는 과거의 고질적 패턴으로 돌아갔다. 1년 전 도보다리에서 문 대통령의 설득에 귀 기울이며 속삭이듯 대화를 나누던 김정은은 언제 그랬냐는 듯 남측을 무시하고 있다.
북한은 어제 남측에 “눈치 보지 말고 선언 내용을 이행하라”고 했다. 남북 경협 범위와 속도에 이견을 보이는 한국과 미국을 이간질하려는 의도다. 김정은은 중국에 이어 러시아를 찾아가 제재에 구멍을 내고 북-중-러 밀착을 통한 대항전선을 구축하는 데 몰두해 있다. 판문점 1년을 맞아 청와대는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낮아졌고, 평화를 위한 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자평했다. 실제로 의미 있는 진전도 없지 않았지만 9·19 군사합의로 우리 측의 대비 태세가 약화되는 등 부작용도 크다.
남북 정상은 1년간 세 차례 만나 문 대통령은 백두산도 오르고, 평양 5·1경기장에서 연설도 했으나 ‘북한 비핵화’의 실체에는 한 발짝도 다가서지 못했다.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한을 설득해 나가는 노력은 결코 포기해선 안 되지만 비핵화에 우선하는 ‘남북관계 과속’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난 1년은 견고한 한미공조와 대북제재, 그리고 유연하지만 당당한 대북 정책만이 북한을 비핵화와 개방으로 이끌 수 있음을 재확인시켜준 학습기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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