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손을 맞잡고 판문점 군사분계선(MDL)을 넘었던 순간이다. 서로를 주적(主敵)이라 삿대질하던 남북 지도자가 판문점에서 만난 것도, 선 넘어 영토를 밟은 것도 모두 처음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흘렀다. 하노이 회담이 ‘노딜’로 끝난 이후 북한은 더 이상 한국 정부와 대화하지 않으려 한다. 그 결과 ‘판문점 선언 1주년’도 한국 정부 ‘단독’으로 자축하는 ‘반쪽짜리’ 기념일이 될 듯하다.
그동안 정부는 판문점선언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여러 공동 행사를 준비해왔다. 크고 작은 장애물이 있었지만 ‘하노이 결렬’ 이전까지만 해도 북한과 ‘대화의 끈’은 이어져 있었다. 하지만 하노이 회담 이후 북한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심지어 북한의 아이디어로 경기도가 추진하던 ‘4·27 평화마라톤’도 북한의 무응답으로 답보 상태다. 당초 북한은 한국의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서 출발해 북한 개성공설운동장까지 ‘마라톤 코스’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하노이 회담 전만 해도 북한이 더 적극적이었는데 회담 이후부터 연락이 아예 되지 않는 걸로 안다”며 답답해했다.
북한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사이 판문점선언 1주년은 한국만의 잔치가 됐다. 중앙정부와 지자체뿐 아니라 민간단체에서 여는 행사만 10여 개에 이른다. 통일부와 서울시, 경기도는 27일 오후 판문점에서 한국과 미국, 일본, 중국의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공연 등이 포함된 ‘먼, 길’이라는 행사를 개최한다. 두 정상이 손을 마주 잡고 선 곳과 30분간 밀담을 나눈 도보다리에도 설치미술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먼, 길’이라는 행사 제목에 ‘멀지만 가야 할 길’이라는 속의미도 담고 있다고 한다. 한국과 미국 일본 중국 등 4개국에서 예술가가 참여해 한반도 평화를 기리지만 ‘북한 예술가’의 자리는 없다. 이 행사를 기획한 탁현민 청와대 행사기획자문위원은 “북-미 회담 이후 어려워진 상황과 쉽지 않은 여정에 대해 이해는 가지만 답답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한미일중 4개국 예술가 섭외도 행사 개최 불과 한 달 전인 4월에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공동행사를 추진하다가 무산돼 급조한 행사가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통일부는 1주년 기념일을 5일 남겨둔 22일 북측에 행사 개최 사실을 통보했다. 아무런 답도 내놓지 않던 북한은 25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성명으로 ‘우회적인 답변’을 내놨다. 북한은 성명에서 한미 연합 공중훈련을 두고 “4·27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이라고 날 선 비난을 내놨다. 사실상 판문점선언 1주년을 함께 기념하지 않겠다며 ‘비토’(거부권)를 행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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