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백화점은 최근 식품코너에서 김밥과 잡채류에 들어가는 시금치와 깻잎 등을 우엉과 어묵으로 교체했다. 빵 등 베이커리 제품과 반찬류의 판매기한은 기존 8시간에서 6시간으로 2시간 줄였고 양념·간장게장, 콩비지, 육회 등은 판매를 중단했다.
상하기 쉬운 제품들을 거둬들이는 ‘하절기 위생관리 프로그램’이다. 5월 초·중순이 돼야 볼 수 있는 풍경이었지만 올해는 보름 이상 일찍 시작했다. 반팔 셔츠 착용 등 하절기 복장 적용도 지난해(5월)보다 한 달 앞서 시행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기온이 오르면서 예년보다 일찍 여름 대비에 들어가고 있다”면서 “하절기 위생관리를 봄철에 한 것은 최근 10년 이래 전례가 없었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의 낮 기온이 28도까지 오르는 등 평년보다 4∼7도 높은 이상 기온을 보이면서 백화점, 마트 등 유통업계에선 이미 여름이 시작된 모습이다. 주요 백화점들은 올해 여름 신상품을 전년보다 한 달가량 앞선 3월 말부터 배치했다. 봄 상품을 한창 팔아야 할 시기지만 백화점들은 이미 ‘시즌오프’를 마쳤다.
‘여름 먹을거리’도 벌써 곳곳에서 눈에 띈다. 이마트는 지난달부터 여름 대표 과일인 수박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더운 날씨가 이어지면서 판매량도 점점 늘고 있다. 이마트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3월 25일∼4월 24일) 수박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0.1%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고당도 프리미엄 수박의 판매량은 같은 기간 163%나 매출이 늘었다. 참외, 자두 등 다른 과일 판매량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여름이 제철인 팥빙수도 예년보다 일찍 모습을 드러냈다. 카페베네, 드롭탑, 파스쿠찌 등 커피전문점들은 지난달 말 이미 빙수 신제품을 선보였다. 지난해에 비해 2, 3주가량 출시가 앞당겨졌다.
‘빨라진 여름’은 특히 패션 부문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백화점 남성복 코너에는 봄철 유행하는 트렌치코트 대신 공기가 잘 통하는 리넨이나 시어서커 소재의 제품이 이미 들어섰다. 지난해 대비 2주가량 앞선 모습이다. 더운 날씨가 계속되면서 여름옷을 찾는 고객도 늘고 있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이달(1∼22일) 기준 남성 여름 패션 상품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6.4%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수영복 매출도 지난해와 비교해 12.3% 늘었다.
여름의 존재감이 커지면서 유통업계에서 봄은 점점 실종되고 있는 추세다. 업계에 따르면 트렌치코트, 카디건, 재킷 등 간절기 의류 아이템의 물량은 지난해 4월보다 15%가량 줄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여름이 빨라지면서 판매 기간이 짧은 간절기 아이템 생산을 점차 줄이고 있다”며 “이상 기온의 영향으로 기존 시즌별 패션 공식들이 깨지고 있다”고 말했다.
속이 꽉 찬 ‘봄 꽃게’도 올해 이상 기온으로 어획량이 30% 이상 크게 줄면서 가격이 급등했다. 업계에 따르면 이달 봄 꽃게의 kg당 가격은 작년 대비 1만 원가량 오른 3만7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높은 가격 때문에 대형 마트에선 울며 겨자 먹기로 봄 꽃게 대신 냉동 꽃게를 판매하는 실정이다. 서해수산연구소는 올해 서해 앞바다의 수온이 평소보다 1∼2도가량 낮아 꽃게가 수면 아래쪽으로 이동하면서 어획량이 크게 줄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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