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선수들을 ‘페이스 투 페이스(Face to Face)’로 만나 ‘하트 투 하트(Heart to Heart)’ 로 통했다는 것 자체가 운명 아닐까요.”
20년 가까이 한국 축구 대표팀 선수들의 재활 치료에 힘썼던 최주영 전 대한축구협회 의무팀장(67·사진)이 박항서 베트남 축구 대표팀 감독 곁에서 의무팀 수석 트레이너로 인생 2막을 연다. 출국 전날인 지난달 23일 만난 최 전 의무팀장은 ‘운명’이라며 지난날의 의미를 되새겼다.
최 전 팀장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박항서 당시 코치와 함께 거스 히딩크 감독 밑에서 손발을 맞췄다. 최근 쌀의 주산지인 베트남의 히딩크라는 뜻으로 ‘쌀딩크’로 불리는 박 감독이 축구협회 업무에서 물러나 있던 최 전 팀장에게 손짓했다. 히딩크 감독처럼 박 감독은 베트남 선수들의 체력을 끌어올리는 데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자연스레 최 전 팀장의 역할도 중요해졌다.
오랜 트레이너 생활로 다져진 그이지만 새로운 도전이 부담스럽지 않을 리 없다. 최 전 팀장은 “베트남에서도 선수들에게 신뢰감을 주는 게 먼저”라고 했다.
그는 둥지를 옮기려니 국가대표 선수들과의 인연이 스쳐 지나간다고 했다. 40세에도 현역으로 뛰고 있는 이동국(전북)을 먼저 떠올렸다. “2002년, 2006년 월드컵에 불운하게 못 갔던 동국이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도 못 갈 뻔했다. 실은 엔트리 발표 3주 전에 동국이가 햄스트링을 다쳤다. 병원에서 5주 진단이 나왔는데 내가 허정무 감독께 3주면 된다고 하고 정성을 다해 재활을 시켰다. 마지막 오스트리아 전지훈련 때 정상이 되더라. 아찔했다”고 했다.
요즘 방송인으로 활약 중인 안정환 얘기를 하니 “2002년 월드컵 직전에 정환이가 제주도 캠프에서 마지막 평가전을 하고 발목을 다쳤다. 23명 엔트리에 못 들어갈까 봐 조마조마하면서 재활을 시켰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기적적으로 역전승했던 16강 이탈리아전을 앞두고는 안정환에게 테이핑을 해주다 테이핑 테이프가 끊어졌다고 했다. 그 일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고 했다. 혹시 불길한 전조가 될까 봐 가슴을 졸였다는 것이다. “전반에 정환이가 페널티킥을 실축하는 거야. 환장하겠더라고요. 연장전에 결승골을 넣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라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는 무릎 반월상판(반달 모양의 바깥쪽 연골판) 부상을 당해 수술 진단을 받았던 이근호(울산)를 수술 대신 재활로 월드컵을 보낸 것도 손에 꼽는 보람된 기억이다.
그는 “운명처럼 이 길을 가고 있다. 난 뼛속까지 트레이너인 게 맞다”는 그는 “달콤한 예전 추억들이 힘을 내게 한다. 새로운 현장에서 재활의 진수를 보여줄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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