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물러난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마지막 공무인 퇴위식에서 ‘레이와(令和) 시대의 평화’를 기원했다. 1989년 1월 일왕으로 취임하며 헤이세이(平成) 시대 키워드로 평화를 꼽은 데 이어 다음 시대에도 평화가 이어지기를 강조한 것이다.
이날 오후 5시 일왕의 거처인 도쿄(東京) 고쿄(皇居)의 궁전 안에 있는 영빈관 마쓰노마(松の間).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포함한 각료, 지방자치단체장 등 300여 명의 내빈이 참석해 있는 가운데 육중한 문이 열렸다. 아키히토 일왕과 미치코(美智子) 왕비가 입장했다.
거울, 검, 굽은 구슬로 왕실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세 가지 보물인 3종 신기(神器)가 일왕 양옆 책상에 놓였다.
국민을 대표해 아베 총리가 먼저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는 “일왕은 왕비와 함께 국민들에게 가까이 다가와 내일에 대한 용기와 희망을 주셨다. 우리는 밝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아키히토 일왕은 “오늘로 일왕의 직무를 마치게 됐다. 즉위로부터 30년, 지금까지 일왕으로서 역할을 국민의 깊은 신뢰와 경애 속에서 할 수 있어 행복했다”며 국민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어 “내일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레이와 시대가 평화롭고 많은 결실을 보기를 왕비와 함께 진심으로 바라고, 우리나라(일본)와 세계인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한다”고 전했다. 이 의식을 끝으로 아키히토 일왕의 공무는 끝났다. 퇴위한 아키히토 일왕은 조코(上皇) 지위로 도쿄 아카사카(赤坂)의 옛 사저로 거처를 옮긴다. 이사가 마무리될 여름 무렵까지는 고쿄에서 지낼 것으로 알려졌다.
아키히토 일왕의 재위 중 마지막 공식 발언이지만,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나 헌법과 관련한 언급은 없었다. 아키히토 일왕은 1989년 즉위 후 첫 소감으로 “헌법을 지켜 이에 따라 책임을 다하겠다”는 메시지를 제시했다. 2015년부터는 전몰자 추도식 등에서 과거사와 관련해 “깊은 반성”을 언급했다.
나루히토(德仁) 왕세자는 1일 0시를 기점으로 제126대 일왕으로 즉위했다. 정부 일각에서 “0시에 맞춰 즉위식을 거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국민 편의를 위해 행사를 1일 오전 10시 30분으로 늦췄다. 이 행사는 마쓰노마에서 열리는 3종 신기 계승식이다. 이 의식에는 나루히토 새 일왕의 작은아버지인 마사히토(正仁)와 동생 후미히토(文仁)만 참석할 예정이라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왕위 계승 자격을 갖춘 성인 남성 왕족만 참석한다’는 전례에 따른 것인데, 여성 왕족이 배제돼 논란이 일기도 한다.
공영방송 NHK는 30일 하루 종일 헤이세이 특집을 내보냈다. 중간중간 아나운서가 ‘헤이세이의 남은 시간’을 분 단위로 알렸다. 저녁엔 도쿄 중심가 시부야에 몸을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새 시대를 여는 카운트다운 행사를 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아키히토 일왕이 동서 냉전 말기부터 자신을 포함한 미국 대통령 5명을 일본에 초대한 것에 감사를 표시하고 미일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인을 대표해 나와 아내(멜라니아 여사)는 아키히토 일왕과 미치코 왕비에게 진심 어린 감사의 뜻을 전한다”며 “헤이세이 시대가 가고 새로운 세대가 즉위를 준비하는 시점에 미국과 일본의 긴밀한 관계가 갖는 중요성을 인식하고 싶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시대에 위대한 동맹인 일본과의 파트너십과 협력이라는 전통을 지속해 나가기를 고대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 26∼28일 일본을 국빈 방문해 아베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해외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나루히토 신임 일왕을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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