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수석이 본연의 역할 못하면 정권 몰락 부른다는 교훈 잊었나
인사권으로 검찰 장악도 모자라 ‘검찰 잡는 사정기관’ 공수처까지
민주주의는 이렇게 무너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의 민정수석 우병우 덕분에 배운 게 있다. 공부 잘하고 똑똑하다고 다가 아니라는 거다.
비선 실세 문건이 2014년 말 불거졌을 때 ‘문건 유출 사건’으로 본말을 뒤바꿔 대통령 눈에 든 사람이 우병우였다. 그 좋은 머리로 대통령 주변 관리 같은 본연의 업무에 충실했으면 좋으련만 그는 검찰을 장악하고 청와대는 곪아터지도록 방치해 결국 박근혜 정부 몰락에 일조했다. 빠릿빠릿한 명석함이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독(毒)이 된다면 좋은 대학 나와 벼슬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조국 민정수석에게도 배우는 게 많다. 외모로 사람을 평가해선 안 된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키 크고 싱겁지 않은 사람 없다지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놓고 여야 4당과 자유한국당이 충돌한 지난주 조국의 페이스북은 싱거운 정도를 넘어선다. 국회 회의를 방해하면 처벌한다는 국회법에 이어 ‘좀비’ 노래를 올린 건 대통령 비서 자질이 의심스러운 일이었다.
국회법 위반으로 벌금형 또는 실형을 받으면 5∼10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다는 선거법까지 언급한 데선 촉법소년 같은 치졸함이 엿보인다. 검찰과 사법부를 동원해 ‘촛불민심이 반영되지 않은 20대 국회’를 처리하고 새판을 짜겠다는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다.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의 보좌역다운 엄중함은 없대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안 보이는 고위공직자는 ‘사람이 먼저’라는 이 정부에 독이 될 수 있다. 국민이 선출한 의원과 사법제도까지 능멸하는 가벼움도 좌파의 싸가지 없음을 재차 확인시킨다. 그러고도 의회주의 운운하다니 공부 잘하고 똑똑하다는 게 무슨 소용 있나 싶다.
적어도 우병우는 말이 많진 않았다. 검찰에 불려가서도 전관예우 받는 모습을 노출해 본의 아니게 검찰개혁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의 필요성을 일깨우는 우를 범했을 뿐이다.
조국은 작년 9월 페이스북에 “대통령 장관 청와대 실장과 수석들이 대통령의 인사권 영향하에 있는 검찰이 아니라, 국회의 인사권 영향하에 있는 공수처의 감시와 수사를 받겠다는데 왜 막는 것인가”라고 외침으로써 대통령이 인사권으로 검찰을 장악하고 있음을 만방에 공개했다. 그래서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에 줄줄이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것을 제 입으로 알린 셈이다. 공직자가 말이 많아선 안 되겠다는 것도 조국을 보며 배운다.
사실 대통령 장관 청와대 실장과 수석들 감시는 민정수석 책임이다. 조국이 제 할 일만 잘했어도 혈세 들여 공수처를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더구나 페이스북과 딴판으로 공수처를 국회의 인사권 영향하에 두지 않은 건 국민을 속인 행위나 다름없다. 여당 법안에 따르면 여당 추천 2명, 야당 추천 2명에 법무부 장관,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협회장의 7명으로 공수처장 추천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공수처 역시 대통령 영향하에 두는 무소불위의 사정기관을 또 만드는 의도가 궁금하다.
조국은 2010년 ‘진보집권플랜’ 책에서 “대통령이 검찰을 이용하듯 고비처(공수처)를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불식하려면 고비처장을 여야가 합의해 대통령에게 추천해서 임명하도록 하면 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법안이 현실화할 경우 공수처는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받기는커녕 대통령에게 검찰처럼 이용당하는 괴물이 될 판이다.
공수처가 보장받은 게 있긴 하다. 대통령 인사권으로도 장악되지 않는 간 큰 검찰을 통제할 기소권이다. 조국은 “검찰이 고 노무현 대통령을 부엉이바위에 올라가도록 ‘토끼몰이’를 했다”고 분노한 적이 있다. 민정수석으로서 정권 후반기 칼을 꽂을지 모를 검찰을 제압하는 마지막 제도적 독극물을 박아놓고는 ‘새로운 100년’을 여는 꽃가마에 오를 듯하다.
조국이 검찰과 법원을 장악하고, 선거제도 등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과정은 세계적 베스트셀러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내용과 놀랍게 비슷하다. 잠재적 독재자는 이런 반(反)민주적 행태를 정당화하기 위해 경제 위기나 안보 위협도 이용한다는 대목만은 제발 닮지 말기 바란다. 나는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진심으로 원하지만 만에 하나 실패한다면, 조국은 ‘문재인의 우병우’로 기억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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