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초 법조윤리협의회에서 연락이 왔다. ‘공직퇴임(전관) 변호사 등의 연도별 수임 내역 자료’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지난해 8월부터 여러 차례 자료 공개를 요청했다가 번번이 거절당한 바로 그 자료였다. 곧바로 윤리협의회 사무실이 있는 서울 서초동 변호사교육문화관 5층 사무실로 갔다.
자료에서 2012년 이후 변호사 수가 급증했는데도 지난해 전관 변호사가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보다 사건을 평균 3배 가까이 더 수임했다는 통계를 일부 확인했다. 전관예우를 막기 위한 이른바 전관예우방지법(2011년 5월 시행) 관피아방지법(2015년 3월 시행) 김영란법(2016년 9월 시행) 등이 연이어 시행됐는데도 ‘전관 불패 신화’는 오히려 더 세졌다는 것이 수치로 확인된 것이다.
그전까지 단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는 자료였다. 윤리협의회는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에도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2007년 7월 출범한 윤리협의회는 전관예우의 징후를 파악해 사전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하지만 공개된 자료의 내용이 기대에 턱없이 못 미쳤다. 통계의 구체적인 근거와 세부 항목을 알고 싶었지만 장벽이 높았다. 전관 변호사 중 구체적으로 누가 얼마나 많은 사건을 수임했는지, 어떤 사건을 수임했는지가 모두 비공개였다. 윤리협의회 사무실 안에 박스째 쌓여 있는 A4 용지 70만 장 분량의 원본 데이터에는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왜 그럴까. 변호사법 89조 8항은 윤리협의회 위원이나 사무직원 등이 업무 처리 중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윤리협의회는 조직의 고유 목적인 ‘전관예우 실태 분석’에 부합하는 분석 자료 중 공익을 위해 공개해도 되는 것으로 결정한 일부만 공개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전관 변호사가 얼마를 버는지 파악할 수 있는 정보가 아예 신고 대상이 아닌 것이다. 수임료는 사건의 경중에 따라 적정한 보수를 받았는지 판단해 전관예우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결정적인 자료인데도, 전관예우를 막자고 설립한 윤리협의회는 수임료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또 수임 건수의 경우 퇴직한 지 2년이 안 된 전관 변호사는 윤리협의회에 신고해야 하지만, 2년이 지나면 6개월마다 형사사건 등이 30건 미만일 경우 신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수임 건수를 조정하면 신고 대상에서 빠질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 대법원 사건을 가장 많이 수임한 7명의 전직 대법관 중 윤리협의회에 수임 명세를 신고한 변호사가 없다는 게 단적인 사례다. 한 법조윤리위원은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전관으로 돈을 많이 버는 진짜 거물들은 신고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렇게 전관예우 실태 공개를 막고 있는 장벽을 제거할 방법은 없을까. 국회가 나서면 된다. 공직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전관예우는 없다”고 하면 의원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협공해 호통을 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렇게 힘을 뺄 게 아니라 전관 변호사들이 수임료를 윤리협의회에 신고하도록 하고, 차관급 이상 전관은 퇴직 기간과 관계없이 신고를 의무화하도록 법을 바꾸면 된다. 그리고 윤리협의회는 신고된 내용을 바탕으로 전관예우 실태를 분석해 이 수치를 정기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전관예우에 관한 진단이 정확해야 제대로 된 처방이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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