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래퍼 카녜이 웨스트는 지난해 10월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났다. 트럼프의 열혈 지지자인 웨스트는 이날 기자들에게 “사람들은 흑인이라면 당연히 민주당을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생각이 오히려 바로 인종차별”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MAGA)’라는 문구가 적힌 자신의 빨강 모자를 가리키며 자랑했다. “이 모자는 나를 마치 슈퍼맨처럼 느끼게 해 준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는 트럼프 대통령의 2016년 대선 슬로건으로 이 문구를 담은 야구 모자를 ‘매가 햇’이라고 부른다. 대선 당시 트럼프는 매가 햇을 쓰고 미 전역에서 선거운동을 펼쳤다. 트럼프 돌풍과 더불어 이 모자도 불티나게 팔렸다. 이후 매가 햇은 트럼프 지지자의 징표로 통한다. 지난달 26일 전미총기협회 연차총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무기거래조약(ATT)의 거부 선언을 했을 때 참석자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올렸다. 그들은 모두 매가 햇을 쓰고 있었다.
▷이 선거운동용 모자가 100만 개나 팔렸다고 한다. 개당 가격이 45달러이므로 판매금액이 4500만 달러에 이른다. 최근 트럼프 재선 선거캠프의 브래드 파스케일 선대본부장은 한 방송에서 100만 개 돌파 소식을 전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공학의 예술을 재정의했다는 이정표”라고 강조했다. 매가 햇이 히트하면서 ‘미국을 다시 책 읽는 사회로’ ‘미국을 다시 영국으로’ 등 대선 슬로건을 패러디한 문구가 적힌 빨강 모자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여기까지야 애교로 볼 수 있으나 문제는 매가 햇이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는 논란의 대상으로 부상했다는 점.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문구가 일각에서 백인우월주의 상징이라거나 인종차별적이란 의심을 받으면서 모자를 둘러싼 크고 작은 충돌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일부 상점과 식당에서 매가 햇을 쓴 손님의 출입을 제지하거나 서빙을 거부해 말썽을 빚는가 하면 올 2월 한 쇼핑몰에서는 매가 햇을 쓴 부부를 총으로 위협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매가 햇 착용을 금지하는 학교를 학생이 고소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는 곧 트럼프 집권 이후 그의 지지층과 반대편 사이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다. 정치적 믿음이 다르면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 사회의 퇴행을 보는 듯하다. 다만, 표 결집을 위해서라면 온갖 방법으로 사회 분열을 부추기는 것이 미국 정치만은 아니라는 점이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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