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는 냉면집이 제법 많다. 그중 남쪽 사람들도 다 아는 옥류관부터 청류관 평양면옥 평남면옥 선교각 평천각 천지관 고려호텔 평양호텔 룡흥식당 등은 10대 냉면집으로 불리며 맛집으로 통한다. 이 외 인민무력성 본부에 있는 장령식당도 냉면 맛이 상당히 좋지만, 장성에게 할당된 식권이 있어야만 이용할 수 있어 일반인이 맛보긴 어렵다. 평양 사람들은 이 중에서도 옥류관과 청류관, 고려호텔 지하 1층 냉면(1층에도 냉면집이 있다)을 3대 냉면 맛집으로 손꼽는다.
평양냉면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옥류관은 지명도에 비해 운영 방식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옥류관은 휴일인 월요일을 빼고 여름이나 겨울이나 항상 낮 12시부터 오후 7시까지 하루 1만 그릇만 판다. 그런데 표는 5000개만 발매된다. 표 1개당 무조건 곱빼기 냉면까지 두 그릇이 나오기 때문이다. 옥류관 냉면은 양이 많다. 기자가 평양에 있을 땐 “오늘은 무조건 세 그릇을 먹어야지”라고 맘먹고 쫄쫄 굶고 가도 두 그릇 반 이상을 먹지 못했다.
선주후면(先酒後麵)을 중시하는 북한에선 1인당 25도짜리 평양술을 한 잔씩 준다. 주문한 냉면 수와 상관없이 무조건 사람 수만큼 술잔을 준다. 식사 후엔 자체 생산한, 맛이 참 괜찮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후식으로 주는데 이것도 1인당 한 컵이다.
5000개 표 중 대략 절반은 옥류관이 자체로 소비한다. 권력기관에서 요구할 때 내줄 몫으로 당비서표, 지배인표, 기사장표, 조리사표 등 권력 순서에 맞춰 적당량이 배분된다. 월급과 배급으로만 살 수 없는 옥류관 종업원 수백 명도 이 표로 먹고산다. 표를 다른 기관에 주고 과일이나 라면 등을 바꿔 종업원들이 나눠 갖는 식이다.
나머지 2500개는 지도기관인 인민봉사총국에 넘겨진다. 총국은 이 표를 오늘은 평양화력발전소에 100개, 영예군인공장에 50개, 어느 인민반에 30개 하는 식으로 배분한다. 외화를 받는 식당을 제외하면 평양시내 주요 식당 표는 모두 이런 방식으로 유통된다. 냉면표를 받은 기업의 간부는 다시 적당히 알아서 나눠주거나 팔아먹는다.
다른 냉면집은 오전 6시부터 한정수량을 현장 판매한다. 그럼 할 일 없는 노인들이 일찍 나와 줄을 서서 산 뒤 암표로 팔아 차액을 챙긴다. 하지만 옥류관은 공급용 표만 있다. 공급용 표는 1인 표가 없이 최소 10명 표부터 시작해 20명 표, 50명 표 등으로 나뉜다. 지방 사람이 옥류관 냉면을 먹으려면 일단 옥류관 앞에 가서 암표상을 찾아야 한다. 암표 1장은 북한 돈 2만 원, 달러로는 2.5달러 정도 가격에 거래된다. 10명 표를 샀다면 모르는 사람 9명과 함께 팀을 이뤄야만 한다. 만약 먹다 남으면 육수, 면, 고기를 따로따로 담아 집에 가져갈 수 있다. 집에 보관했다 먹으면 대개 면이 풀어져 있어 맛은 크게 떨어진다.
고려호텔이나 평양호텔, 천지관처럼 외화로 운영되는 곳에는 일반 공급표가 없다. 이런 곳은 돈을 내면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다. 가격은 양에 따라 다르다. 냉면 100g은 4달러, 150g은 5달러, 200g은 6달러를 받는 식이다.
평양 사람들에게 냉면 맛집을 물으면 옥류관이라는 대답이 압도적으로 많다. 하지만 북에서 달러를 좀 만져본 사람들은 부유층만 가는 고려호텔 지하 1층 냉면을 더 많이 꼽는다. 이들은 그 이유에 대해 “일반인 상대 식당보다 달러를 받는 냉면집에서 최고의 냉면장인들이 일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고 말한다.
10년 전 기자는 한국의 유명 평양냉면집 순위를 매긴 적이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매우 오만한 행동이었다. 지금은 어느 냉면이 제일 맛있냐고 질문을 받으면 “냉면 맛을 처음 배운 냉면집이 제일 맛있는 냉면집이다”라고 대답한다.
그런 이유로 기자는 늘 서울의 냉면집보다 맛을 배웠던 평양냉면이 제일 그리웠다. 그동안은 그 아쉬움을 달랠 방법도 없었다. 유명 냉면집에서 진짜로 일했던 탈북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전 고려호텔 지하 1층 냉면집 조리사 출신이 서울에 냉면집을 냈다고 한다. 양강도 분질감자 전분을 구할 수 없어 100% 똑같지는 않겠지만 고려호텔 지하 식당의 냉면 레시피가 서울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기자에겐 축복처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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