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후 서울 중구 경찰청 앞 사거리 서소문고가차도의 13번째(P13) 교각을 살펴보던 안형준 한국초고층도시건축학회연구원장(62)은 이렇게 말했다. P13 교각은 철제 기둥이 지탱하고 있었다. 교각 끝 부분은 지난달 중순 덧씌워진 콘크리트로 다른 부분보다 밝아 보였다.
3월 25일 오후 1시 43분경 P13 교각을 덮고 있던 철제 패널 6개와 수십 개의 콘크리트 덩어리가 고가차도 아래로 떨어지는 ‘박락(剝落)’ 사고가 있었다. 사고가 발생한 장소는 경찰청에서 호암아트홀 방향으로 좌회전을 하는 차로다. 떨어진 패널 크기는 가로 1.8m, 세로 1.6m였다. 사고 당시 지나가는 차량이 없었던 게 다행이었다. 1966년 개통한 서소문고가차도는 지난해 기준 하루 평균 5만1000여 대의 차량이 다니는 곳이다. 고가 아래로는 경의선 철도가 지난다.
서울시 서부도로사업소는 박락사고 다음 날인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민간 전문가들과 함께 고가차도에 대한 긴급 점검을 벌였다. 점검 결과 P13 교각의 겉으로 드러난 내부 철근 상태는 심각했다. 오랜 시간 공기에 노출된 철근은 부식돼 본래 모습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점검에 참여한 민간 전문가는 “콘크리트로 스며든 수분이 균열을 일으켜 철근까지 부식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박락사고 직후의 현장 사진을 확인한 한 건설회사 관계자는 “고가차도는 1960년대에 지어져 철근을 둘러싸는 피복 역할을 하는 콘크리트가 요즘보다 얇았을 가능성이 있고 장시간 수분이 침투하면서 콘크리트 이탈과 철근 부식이 연이어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서울시는 2008년 미관상의 이유로 서소문고가차도 교각과 상판 양옆과 아래를 철제 패널을 덮어씌우는 리모델링을 했다. 하지만 콘크리트 구조물을 패널로 가리면서 패널 안쪽에서 벌어지는 균열이나 부식 등의 문제를 알 수 없게 돼버렸다. 감사원도 2013년에 패널 설치에 따른 이런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서울시는 개선하지 않았다.
구조물이 패널로 가려져 있다 보니 서울시가 지난해 10월 실시한 안전점검 또한 겉핥기 수준에 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 원장은 “패널로 가려진 구조물을 진단하는 것은 두꺼운 옷을 입은 채 X선 촬영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현재 상태를 봤을 때는 당장 고가차도를 통제하고 보수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D등급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10월 안전점검에서 구조상 큰 문제는 없다고 보고 B등급 판정을 내렸었다.
서소문고가차도에는 여전히 차들이 다니고 있다. 박락사고 직후 실시한 안전점검에서 구조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고 직후 점검한 교각은 P13 교각을 포함해 전체 18개 중 5개뿐이었다. 고가차도 아래를 지나는 경의선 철도 부근 교각과 상판은 철도보호지구에 있어 점검을 하려면 한국철도시설공단과의 협의가 필요하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서울시는 3월 25일 있었던 박락사고를 시민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간 부분은 긴급 보수공사를 통해 메웠기 때문에 시민에게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안 원장은 “고가차도 전체 구조물의 안전 상태를 모르는데 시민을 통행시킨다는 건 위험한 일”이라며 “조속히 구조물 전체 상태를 확실하게 파악해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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