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마케터인 김모 씨(34)는 출근길 가장 먼저 e메일을 확인한다. 업무 연락을 위해서가 아니다. 뉴스레터로 최신 트렌드를 살피기 위해서다. 기존엔 소셜미디어나 포털을 먼저 봤지만 올 들어 패턴을 바꿨다. 현재 구독하는 뉴스레터는 20여 개에 이른다. 주제도 경영, 라이프스타일, 디자인, 여행 등 다양하다. 그는 “관심사에 맞는 정보를 효율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e메일 뉴스레터가 최근 젊은층을 중심으로 각광받고 있다. 1990년대 중후반 PC통신, 인터넷과 함께 등장한 뉴스레터가 기업이나 기관 광고를 싣는 고리타분한 스팸메일로 분류됐던 것과 대조적이다.
첨단 미디어가 잇달아 등장하는 2019년에 ‘구식의 뉴스레터’가 뜨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상 최대의 구독자(430만 명)를 확보하며 승승장구하는 뉴욕타임스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곳은 무려 60가지의 뉴스레터를 발행한다. 정치, 경제는 물론이고 요리, 달리기, 인종, 젠더 등 관심사별로, 오전 오후 등 시간대별로, 칼럼 필진별로 쪼개 발행한다. 맞춤형으로 보내는 만큼 뉴스레터를 읽는 비율은 약 70%나 된다.
뉴스레터는 플랫폼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전략이기도 하다. 뉴욕타임스가 최근 애플이 ‘뉴스판 넷플릭스’를 목표로 추진하는 애플뉴스에 기사를 안 주겠다고 선언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실제로 기업가치가 한때 1조 원으로 추산됐던 버즈피드는 뉴스 유통의 주요 채널인 페이스북이 뉴스 노출 알고리즘을 바꾸자 감원하는 등 휘청거리고 있다.
아예 뉴스레터가 주력인 미디어 기업도 인기다. 똑똑한 간결함(smart brevity)을 내세운 ‘액시오스’는 뉴스레터로 이슈를 정리해 준다. 2017년 출범해 매출액이 매년 2배 이상으로 늘고 있다. ‘더 스킴’은 친근한 말투에 간결한 방식으로 뉴스레터를 보내 구독자 700만 명을 확보했다.
국내는 초기 단계지만 ‘뉴닉’이라는 미디어 스타트업이 선전하고 있다. 예컨대 1분기 성장률이 발표된 날 ‘쉿, 이번 성적 비밀이야’라는 뉴스레터를 통해 ‘왜 그렇게 성적이 나빴대?’(성장률 하락 이유), ‘사람들의 반응이 어때?’(성장률 하락을 보는 여러 시각) 등을 각종 이모티콘과 함께 밀레니얼 세대의 언어로 풀어낸다.
작가들도 뉴스레터를 창작 배출구로 쓴다. 학자금 대출 2500만 원을 갚기 위해 지난해 2월부터 구독자에게 월 1만 원을 받고 ‘일간 이슬아’라는 뉴스레터로 수필을 보내는 이슬아 작가는 현재 대출금을 다 갚았고 글을 책으로 펴내 10쇄까지 찍었다. 뉴스레터 발송 앱인 ‘서브스택’ 가입 작가는 올 들어 매월 40%씩 늘고 있다.
뉴스레터의 인기는 어찌 보면 예견됐었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디지털 미디어의 부작용에 대한 반(反)작용으로 본다. 소셜미디어는 정보의 홍수를 이루고 광고가 범람하며 포털엔 팩트보다 감정에 호소하는 기사나 낚시성 기사가 적지 않다. 주의력이 희소자원인 시대에 뉴스레터는 세분화된 개인 취향에 맞춰 개인이 원하는 정보를 제공한다. e메일 우편함이라는 정제된 환경에 양질의 콘텐츠를 태워 보내는 전략이다.
결국 독자가 원하는 콘텐츠 본질에 집중해야 진화하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 21세기에 ‘새로운 미디어’로 변신한 20세기의 뉴스레터가 던진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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