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도 주차도 다 똑같다고. 더 좋은 상대가 나타나겠지 싶어서 기다리다 보면, 빈자리는 하나도 없고, 결국 아까 갔던 곳으로 되돌아가도 그 자리는 이미 차 있다고.”
20대처럼 열정적이지도, 40대처럼 안정적이지도 못한. 뜨뜻미지근하고 어정쩡한 30대. 이 소설집에는 더 이상 뜨거워지지 못하는 30대 커플의 일상이 여럿 등장한다. 9년째 연애하면서 결혼 날짜를 잡지도, 그렇다고 헤어지지도 못하는, 차를 타고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서 1km도 아니고 애매하게 900m쯤 후진해서야 이윽고 관계를 다시 정의하는 그런 관계 말이다.
저자가 문학사상, 현대문학 등에서 2016, 2017년 두 해에 걸쳐 발표한 단편 여섯 작품을 묶은 소설집이다. 각기 다른 단편소설 여섯 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로맨스 푸어’다.
결혼과 출산을 위해 청춘남녀가 남한 땅의 평범한 아파트를 보러 다니는 것이 개성과 평양에 분양받는 것만큼이나 초현실적인 일이 된 시대다. 단편 ‘오믈렛이 달리는 밤’ 속 표현대로 “2세를 낳지 않음으로 인해 멸종되는 개체가 있다면 그건 전 인류가 아니라 개인”일 뿐인데 온갖 오지랖과 현실 속에 시달리는 우리 시대의 ‘로맨스 푸어’를 위해 작가는 그들 나름의 있음 직한 로맨스를 창조해냈다. 그리고 그들을 그리는 과정에서 진부한 슬픔이나 좌절 대신 비약이나 유머를 통해 ‘웃픈’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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