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맨해튼 관광 명소인 하이라인 공원 주변에 눈길을 끄는 건물이 있다. 누군가 죄수복을 입고 쇠사슬에 묶여 있는 금발 인형을 옥상 난간에 설치해 놨다. 영락없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다. 관광객들은 ‘죄수가 된 대통령’을 떠올리며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권력을 우상처럼 떠받드는 나라였다면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 걱정부터 들었을 거다.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가 트럼프 대통령의 2016년 대선 과정 중 러시아 공모 및 사업 방해 등 주요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 하지만 민주당 텃밭이자 반(反)트럼프 성향이 강한 최대 도시 뉴욕에선 여전히 대통령에 대한 불신과 반감이 큰 것처럼 보인다. 물론 공장이 떠나고 실업과 불황에 시달렸던 중서부 ‘러스트벨트’ 지역 주민, 고졸 이하 백인 남성 등 트럼프 골수 지지층도 여전히 건재하다. 1일 CNN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은 43%로 2년 만에 가장 높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을 떠받치는 대들보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그의 정치적 상상력을 현실로 바꾸는 듯 보이는 탄탄한 ‘경제 성적표’다. 미국 경제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뛰어넘어 1분기(1∼3월)에 3.2% 성장했다. 올해 7월까지 성장세가 지속되면 ‘10년 연속 성장’이라는 대기록까지 세운다. 실업률은 50년 만에 가장 낮고 인플레는 2% 밑이다. 1분기 미국의 노동생산성은 전 분기 대비 2.4% 올라 8년 6개월 만에 가장 많이 상승했다. 보수 진영에선 지난해 감세와 규제 완화가 노동력을 늘리고 기업들의 생산설비 투자를 확대해 노동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공급 측면’의 성장으로 이어지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
민주당이 주장하듯 이 모든 경제 성과를 대통령 홀로 만든 건 아니다. 그래도 성장의 불씨를 키워 간 그의 공로는 유권자들도 알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40%대를 맴돌고 있지만 경제 분야 지지율은 어느새 50%대를 훌쩍 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가 바닥을 길 때 선거를 치른 제럴드 포드, 지미 카터, 조지 부시 대통령을 빼고는 현직이 모두 재선에 성공했다. 미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점치며 강력한 경제적 성과를 이유로 꼽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분위기를 선거 때까지 최대한 끌고 가고 싶을 것이다. 그는 지난달 23일 트위터에 “‘옛날’에 여러분이 대통령이었고, 경제가 좋았다면 기본적으로 비판에서 면제됐다. 기억하라. ‘바보야, 문제는 경제다(It‘s the economy, stupid)’”라는 글을 올렸다. 1992년 대선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을 무너뜨린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선거 구호까지 소환했다. 대통령이 되기 전 저금리가 금융 거품을 만든다고 비판했던 그가 요즘엔 금리를 1%포인트 내려야 한다고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대놓고 닦달하고 있는 걸 보면 그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있다.
내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맞서겠다고 나선 도전자 20명 중 상당수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무소속·버몬트)처럼 경제적 성과의 과실이 부자들에게만 돌아간다는 ‘민주적 사회주의’ 프레임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지갑이 두둑해진 유권자들이 얼마나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여러분은 4년 전보다 더 살기 좋아졌나요? 아주 간단하죠. 그렇죠?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면 좋아하지 않는 이에게도 표를 줄 겁니다.”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이 지난달 30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밀컨 콘퍼런스에서 이렇게 큰소리를 쳤다. 과연 그럴까. 내년 미 대선에서도 문제는 또 경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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