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가정의 달… 법-제도 울타리 밖에 내몰린 ‘가족’들
가족 형태 다양해지고 있는데… 결혼해야만 가족인가요
차별과 싸우는 미혼가족… 10년 살아도 법으론 ‘남’인 동거가족
《난산이었다. 턱밑까지 올라온 비명을 차마 내지르지 못했다. “소리를 질러야 호흡이 수월하다”고 간호사가 말했지만 이를 더 꽉 깨물었다. 출산의 고통보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다는 부끄러움이 더 컸다. 그렇게 꼬박 24시간을 버텼다.
2011년 3월 정수진 씨(38)는 자연분만으로 아정 양(8)을 낳았다. 엄마가 됐지만 세상은 그를 ‘미혼모’라고 불렀다. 출생신고서상 딸은 혼외자로 구분됐다. 주변에선 ‘능력도 안 되면서 왜 아이를 낳았느냐’는 핀잔이 이어졌다. 엄마는 강하다지만 이런 차별과 편견 속에서 아이를 키우려면 ‘투사’가 돼야 했다. 그는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 건 아이를 책임진 내가 아니라 아이를 외면한 사람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결혼은 선택’이라고 말하는 젊은이가 늘고 있지만 정 씨처럼 미혼 가족이나 동거 가족이 겪는 차별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10여 년을 함께 살아도 동거 가족은 서로의 수술동의서에 서명조차 할 수 없다. 해외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선 결혼과 혈연, 입양으로만 법적 가족을 인정받는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저출산고령사회 로드맵’에서 ‘태어난 모든 아동이 존중받는 포용사회’를 새로운 목표로 내세웠다. 가족 형태를 떠나 모든 아이를 정부가 동등하게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출생신고 시 혼외자 구별 폐지를 추진하고 있지만 ‘포용사회’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뗀 수준이다.》
정수진 씨(38·여)는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1개월가량 지나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태동을 느끼고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지만 현실은 막막했다. 당시 그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사업 실패로 생긴 빚을 갚고 생활비를 빼면 남는 게 얼마 되지 않았다. 임신 8개월 무렵 정 씨가 임신한 사실을 안 편의점 사장은 “결혼도 안 한 여자가 어떻게 임신을 했냐. 너 같은 사람은 신뢰할 수가 없다”고 훈계했다. 그는 일을 그만둬야 했다.
출산 후 월세 35만 원짜리 원룸에서 혼자 몸조리를 했다. 2.4kg. 정 씨의 딸은 출생 당시 또래보다 작았다. ‘임신 사실을 숨기려 배를 복대로 꽉 싸맸기 때문은 아닐까.’ 정 씨는 아직도 딸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 “왜 아비 없는 자식을 낳아서…”
모아둔 돈은 금세 바닥이 났다. ‘능력이 안 되는 부모는 아이를 키우면 안 된다’는 말들이 자신을 향한 손가락질처럼 여겨졌다. 현실이 정말 그렇다면 딸은 좋은 환경에서 자라길 바랐다. 정 씨는 생후 15일 된 딸을 입양 기관에 맡겼다. “며칠 내내 우는 저를 보고 동네 친한 언니가 ‘부모님께 사실대로 얘기하고 아이를 데려오라’고 하더군요.” 그 언니도 두 자녀를 키우는 미혼모였다.
사흘 만에 다시 입양 기관을 찾았지만 아이를 데려가려면 연락조차 안 되는 생부를 데리고 오라고 했다. 아이를 며칠간 맡아준 비용도 내야 했다. 정 씨는 가족과 지인에게 사정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다. 열흘 만에 다시 딸을 품에 안았다.
“아이 아빠가 없는데….” 정 씨의 말에 동주민센터 직원은 출생신고서 부의 인적사항란에 엑스(×)표를 그었다. 혼외자라는 표시다. 이런 관행이 차별이라는 비판이 나오자 제도가 바뀌긴 했다. 공무원 대신 부모가 출생신고서에 직접 혼외자를 기입하도록 한 것이다. 며칠 뒤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하려고 다시 들른 동주민센터에서 담당 사회복지사는 정 씨를 앞에 두고 “왜 아비 없는 자식을 나랏돈으로 키우려고 하느냐”고 말했다.
○ 배려 없는 사회, 상처받는 이들
사람들이 무심코 뱉은 말들은 대못이 돼 정 씨 모녀의 가슴에 박혔다. 어느 날 딸이 어린이집에서 “넌 아빠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정 씨가 어린이집 원장에게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하자 원장은 도리어 “어차피 크면 겪을 일인데 이런 것도 예상하지 못했느냐”고 핀잔을 줬다.
학교에선 엄마랑 아빠가 ‘결혼’을 해야 아이가 생기고 가족이 된다고 가르쳤다. 평소 ‘우리 가족은 사정이 있어 아빠랑 같이 살지 못할 뿐’이라는 엄마의 말에 순응하던 딸은 이 수업을 듣고 처음으로 “왜 엄마는 결혼을 안 했느냐”고 따져 물었다.
정 씨는 2014년부터 한국미혼모가족협회 상담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딸은 자신처럼 차별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다. 상담하며 만난 미혼모 대다수는 자신처럼 일과 양육을 홀로 감당하며 경제적 어려움과 돌봄 공백의 이중고를 겪고 있었다. 하지만 정부가 미혼 가족을 위해 추가로 지원하는 건 월 최대 20만 원인 ‘한부모 가족 양육 지원금’ 정도다.
정 씨는 “미혼모에 대한 지원을 촉구하면 ‘무책임하게 즐기다가 아이 낳은 사람한테 왜 나랏돈을 주냐’는 비난이 뒤따른다”며 “국회의원들도 이런 여론을 의식해 미혼모를 지원하는 법 개정에 난색을 표한다”고 말했다.
○ 인생 동반자도 법 앞에선 ‘남’인 현실
박정민(가명·38) 씨는 2006년 동갑내기 여자친구와 결혼 대신 동거를 택했다. 양가 부모와의 관계 등 원치 않는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하는 결혼 제도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박 씨는 “이혼 후 새 가정을 꾸린 부모를 보며 결혼이 꼭 행복의 필수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2년간 동고동락한 박 씨 커플은 법적으로 여전히 ‘남남’이다. 신혼부부 전세자금대출을 받을 수 없어 월세로 집을 구했다. 건강보험료 부양가족 등록도, 연말정산 소득공제 시 인적공제도 할 수 없다. 동거 커플은 응급실에 실려 가도 법적 보호자로 인정받지 못해 서로 수술동의서를 쓸 수 없다. 박 씨는 “파트너가 간단한 외과 수술을 받는데도 부산에 사는 부모님이 올라와 수술동의서를 써야 했다”고 씁쓸해했다. 이들이 아이를 낳아도 법적으론 ‘한부모 자녀’가 된다.
최근 고령화로 이혼이나 사별 뒤 ‘황혼 동거’를 택하는 노인들도 늘고 있다. 권정수 씨(81)와 김복남 씨(71·여)는 매일 아침 두 손을 꼭 잡고 울산노인복지관을 찾는다. 두 사람이 12년 전 처음 만나 사랑을 키운 곳이다. 생일 등 기념일에는 양쪽 여섯 자녀와 손주들까지 모여 대가족을 이룬다. 권 씨는 “이 사람을 만난 덕에 나이 여든에도 옷맵시를 신경 쓰는 멋쟁이가 됐다”고 했다. 김 씨는 “배울 게 많은 스승, 친구 같은 애인”이라며 권 씨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두 사람의 동거를 바라보는 시선이 처음부터 좋았던 것은 아니다. 김 씨는 “돈을 바라고 만나는 것 아니냐는 주위의 수군거림을 견디기 힘들었다”고 했다. 두 사람은 힘든 시간을 함께 이겨내며 관계가 더 단단해졌다고 했다. 자녀들의 응원도 큰 힘이 됐다. 권 씨는 사별하거나 이혼한 친구들에게 새로운 출발을 권한다. 재혼할 수도 있었지만 굳이 혼인 관계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면 얼마든지 동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 갈 길 먼 포용사회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 56.4%가 ‘남녀가 결혼하지 않아도 함께 살 수 있다’고 답했다. ‘결혼해야 한다’는 답변(48.1%)을 처음으로 앞지른 것이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결혼에 대한 인식과 가족 개념이 빠르게 바뀌고 있지만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끌어안는 노력은 더디기만 하다.
현행법은 가족의 개념을 혼인과 혈연, 입양으로 맺어진 관계로만 보고 있다. 이 때문에 동거 가족은 통계조차 없다. 2017년 기준 약 23만 가구인 비친족가구 중 일부가 동거 가구일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학계에서는 동거 가족을 약 20만 가구 정도로 보고 있다. 같은 해 기준 국내 미혼모는 2만2065명, 미혼부는 8424명이다. 입양을 보낸 미혼부모는 뺀 수치다.
다양한 가족을 인정하고 차별을 막으려는 노력은 전통적인 가족 해체를 부추긴다는 일각의 우려 때문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사실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아직 논의를 시작조차 못 했다.
이 법을 개정하더라도 출생신고 시 혼외자를 구별하는 등 차별을 없애려면 민법이나 가족관계등록법 등도 바뀌어야 한다. “결혼하지 않으면 미숙한 가정으로 보지만 이미 각 가정마다 함께 사는 구성원이 다 다르잖아요. 우리도 그런 다양한 가족 중 하나로 봐줬으면 좋겠어요.” 아정 양을 홀로 키우며 ‘투사’가 된 정수진 씨의 소박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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