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4일 강원도 원산 북방에서 동해상으로 대구경 장거리 방사포와 전술 유도무기를 발사하는 훈련을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화염을 내뿜는 무기 사진까지 공개했다. 북한은 이번 발사 장소에서 과거에 무수단 중거리 미사일과 함대함 미사일을 발사한 적이 있다.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를 목표로 체결된 지난해 9·19 군사합의를 위반한 명백한 도발 행위다. 특히 최대 사거리가 240km로 추정되는 이번 발사체의 사정권은 미국보다는 한국이다. 연일 ‘우리 민족끼리’ 구호를 외치면서도 정작 동족을 인질로 삼는 북측의 태도는 용납할 수 없다.
북측의 도발은 2·28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예상된 수순이었다. 당분간 비핵화 협상은 없다며 자력갱생을 강조한 김정은은 지난달 전술 유도무기 사격시험을 참관한 데 이어 이번엔 발사 장면까지 공개하며 협박 수위를 끌어올렸다. 북한의 도발은 대북제재 완화에 부정적인 미국에 불만을 표출하면서 한국에 대해선 미국을 의식하지 말고 남북관계 개선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압박하는 포석이다.
우리 군 당국은 발사 당일 ‘미사일’이라고 발표했다가 40분 만에 ‘발사체’라고 정정했다. 하지만 공개된 사진을 본 전문가들은 발사체 중 ‘전술 유도무기’는 러시아식 탄도미사일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미사일은 방사포와 달리 탄도수정이 가능한 유도(guide) 기능을 갖춘 것이다. 발사체가 미사일로 확인되면 탄도미사일 발사를 금지한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는 중대한 사태다. 군 당국은 발사체 성격에 대한 조사 결과를 조속히 국민들에게 공개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 도발에 대해 “김정은은 나와의 약속을 깨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아직은 관심 끌기 수준이어서 정면 대응할 단계가 아니라는 판단으로 보인다. 미국은 김정은이 사거리를 단거리에서 중·장거리로 차츰 도발 수위를 높여가는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미국은 북한과 협상이 결렬되면 경로를 분명하게 바꿀 것”이라고 경고했다.
해묵은 벼랑 끝 전술이 이번에도 통할 것이라 믿는다면 김정은의 오판이 될 것이다. 비핵화 약속을 무시한 채 도발 수위를 높이면 대화의 끈마저 끊어지고 고립과 엄혹한 국제 제재만이 남을 것이다. 북한의 선의와 태도 변화만 기다리는 우리 정부의 안이한 대응도 바뀌어야 한다. 4·27 판문점 선언 기념식도 북측의 불참으로 ‘반쪽’ 행사로 끝났고, 9·19 군사합의는 올해 들어 북측의 소극적 태도로 진전이 없다. 남북관계의 민감성도 있겠지만 당당히 할 말은 해야 북한을 대화와 비핵화로 이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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